스마트폰 화면에 비 소식 알림이 떴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어 지웠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상관없었다. 우리는 이미 그곳에 가기로 했으니까.
오후 3시, 장미의 붉은색과 비행기의 굉음이 교차하던 순간
신생공원 장미원은 온통 붉은색의 파도였다. 짙은 진홍빛부터 수줍은 분홍빛까지, 수만 송이의 꽃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엉켜 있었다. 5월의 타이베이 공기는 눅눅했다. 피부에 닿는 습기가 마치 젖은 솜처럼 무겁게 달라붙었지만, 그 끈적임조차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져 싫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그 좁은 틈 사이로 서로의 온기가 전해졌다. 누군가는 이 풍경을 낭만적이라고 말하겠지만, 내 눈에는 그저 정성스럽게 가꿔진 식물들의 집합체로 보였다. 하지만 그 무심한 시선조차 너의 옆에 있다는 안도감에 젖어 있었다.
그때, 머리 위로 거대한 금속의 포효가 쏟아졌다. 송산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너무 낮게 날아 기체의 밑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이 공기를 진동시켰고, 가슴팍까지 그 떨림이 전해졌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고 지나간 뒤 다시 정적이 찾아왔을 때, 너는 내 쪽을 보며 작게 웃었다. 특별한 대화는 필요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소리를 함께 견뎌냈고, 다시 찾아온 고요를 함께 나누었다는 것. 그 정도면 충분했다.
공원 입구 꽃집에서 백합 한 다발을 샀다. 다가오는 어머니날을 위한 선물이었다. 하얀 꽃잎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향기가 습한 바람을 타고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백합의 향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그 무게감이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어디선가 단오절의 북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우리는 그 변화를 굳이 정의하려 하지 않고, 그저 서로의 발걸음 속도를 맞추는 일에만 집중하며 천천히 걸었다.
밤 11시, 낮은 천장이 주는 아늑함과 서늘한 시트의 감촉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 끝에서 Lv Ju Wen Lv Tai Bei Song Shan Ji Chang Guan에 들어섰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우디 향이 감돌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아담하고 밀도 높은 공간이었다. 어떤 이들은 좁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샤워실의 천장이 낮아 고개를 조금 숙여야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구조가 좋았다. 마치 비밀스러운 다락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고, 외부의 모든 소란함이 차단된 채 오직 우리 두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상자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침대에 몸을 던졌다. 서늘하고 매끄러운 시트의 감촉이 피부에 닿는 순간,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적당한 탄성이 몸의 곡선을 그대로 받아내는 느낌이 좋아 한동안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창밖으로는 타이베이의 도시 전경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화려한 야경이라기보다, 누군가의 고단한 삶이 켜놓은 작은 등불들의 집합체처럼 보여 마음이 뭉클해졌다.
우리는 호텔 내 라운지에서 가져온 간단한 음료를 곁들였다. 컵 속에서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청량한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기분 좋게 메웠다. 밖에서는 여전히 습한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에어컨이 만들어낸 쾌적한 온도 덕분에 우리는 얇은 이불을 함께 덮고 누웠다.
"반딧불이를 보러 갈까 했었는데."
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대답 대신 이불을 좀 더 끌어올려 너의 온기를 가뒀다. 지금 이 침대라는 작은 섬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무용한 시간이 주는 지독한 안락함. 우리는 서로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일은 무엇을 할지 계획하지 않았다. 그저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이 포근한 시트와 너의 온기가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기를 바랐다. 꽤 근사한 밤이었다.
창가에 놓인 백합 향기가 방 안 가득 고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