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햇살이 바닥에 직사각형을 그릴 때
신베이 산업단지 역에서 내려 호텔로 향하는 길은 짧았지만, 11월의 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게 차가워질 때쯤 Hyatt Place New Taipei City Xinzhuang의 로비에 들어섰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은은한 시트러스 향과 정돈된 공기가 밀려와 여행자의 팽팽했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옆 정수기에서 묵직한 유리 물병에 맑은 물을 채워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은 창문을 통해 길게 쏟아진 오후의 햇살이었다. 빛은 바닥 위에 정교한 황금빛 직사각형을 그려놓고 있었고, 그 빛의 조각들은 마치 이곳에서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는 고요한 초대장 같았다.
방은 생각보다 넓었고, 가구들 사이의 넉넉한 간격 덕분에 우리의 발소리는 작고 조심스럽게 울렸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커다란 소파 구역으로 향했다. 손끝에 닿는 패브릭의 매끄러운 질감이 포근했다. "와, 여기 진짜 조용하다." 나지막한 내 말에 상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으로 보이는 신좡의 무채색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하얏트의 침대는 묵직한 안도감을 주었다. 몸을 누이면 매트리스가 사용자의 무게를 천천히 받아내며 온몸을 감싸 안는 기분이 들었다. 시트의 서늘함이 피부에 닿았다가 이내 체온으로 따뜻하게 물들어가는 그 찰나의 과정이 좋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시간, 옆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숨소리와 적당한 거리의 온도가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완벽한 오후였다.
밤 11시, 도시의 소음이 낮은 저음으로 바뀔 때
저녁을 먹으러 홍후이 광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도심의 활기 속에 섞여 있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홀린 듯 야외 수영장에 들렀다. 11월의 밤공기는 날카로웠지만, 피부에 닿는 물의 온도는 다정했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자 낮 동안 쌓였던 육체의 피로와 마음의 소음이 함께 녹아내렸다. 물속에서 위를 올려다본 신좡의 밤하늘은 완전히 검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들이 섞여 짙은 보라색과 회색이 묘하게 뒤섞인 색조를 띠고 있었다.
우리는 물의 부력에 몸을 맡긴 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창한 미래나 계획이 아니라, 방금 먹은 음식의 여운이나 내일 아침 1층 루이자 커피에서 마실 진한 라테에 대한 사소한 기대들이었다. 물의 부력 덕분에 몸이 가벼워졌고, 마음의 무게 또한 조금 덜어낸 기분이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조명을 낮추자 23층의 높이가 주는 정적이 우리를 감쌌다. 가습기가 내뱉는 규칙적인 물소리가 마치 도시의 심장박동처럼 낮게 깔렸고, 두꺼운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자 포근한 면의 감촉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서로의 손등이 살짝 맞닿은 그 작은 접점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고요하고 밀도 높은 밤이었다. 이곳의 침대는 너무나 안락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조금은 아까울 정도였다.
창가에 놓인 물컵 속에 도시의 불빛이 작은 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