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가 찾아오는 가장 완벽한 시간
32층 인피니티 풀의 물은 기분 좋게 서늘했다. 10월의 신북시는 공기가 투명해 수면 위로 비친 하늘이 마치 잘 닦인 유리판처럼 매끄러웠다. 얇은 가디건 사이로 스며드는 밤바람에 몸이 잘게 떨렸고, 그 전율은 곧 강렬한 허기로 이어졌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Ban Qiao Kai Sa Da Fan Dian의 육중한 회전문을 지나 반차오의 밤거리로 나섰다. 편의점에서 고른 매운 닭강정과 달콤한 푸딩, 정체 모를 현지 과자들이 담긴 비닐봉투의 까슬한 감촉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도시의 네온사인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 번지는 풍경을 보며 우리는 서둘러 객실로 향했다.
바삭한 소음과 눅눅한 진심 사이
"야, 너 아까 수영장에서 춥다고 떨 때 진짜 웃겼어. 거의 진동벨 수준이더라니까."
우리는 업그레이드 받은 寰宇套房의 넓은 침대 위에 편의점 봉투를 쏟아냈다. 닭강정의 매콤한 향이 객실의 은은한 방향제 냄새와 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방이 워낙 넓어 누군가 헛기침을 하면 그 소리가 벽을 타고 한 바퀴 돌아올 것만 같았다.
"웃기지 마, 이건 생존 본능이야. 그나저나 이 방 진짜 넓다. 여기서 굴러다녀도 되겠어."
"굴러다니긴 무슨. 그냥 눕기 딱 좋은 사이즈지. 나 지금 여기서 굴러서 침대까지 가볼래."
서로의 못난 점을 들춰내며 낄낄거리는 소리가 높은 천장까지 닿았다가 흩어졌다. 푸딩의 매끄러운 촉감이 혀끝에 닿고, 바삭한 껍질이 씹히는 소리가 대화의 빈틈을 메웠다. 이번 여행에서 누가 가장 멍청한 길 찾기를 했는지, 내일은 어디를 갈지, 아니 사실은 그냥 내일도 여기서 계속 누워 있고 싶다는 실없는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특별한 주제는 없었지만, 함께 나누는 이 무용한 시간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힘내라는 말이나 과장된 감탄사가 없어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충만했다.
소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
빈 봉투들이 구겨진 채 테이블 위에 흩어지고, 대화의 온기도 서서히 식어갔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푹신한 시몬스 침대 속으로 몸을 던졌다. 빳빳하면서도 부드러운 면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자, 비로소 하루의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반차오의 야경은 31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검은 비단 위에 뿌려진 보석 가루 같았다. 낮은 에어컨 작동음만이 정적을 채우는 밤,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 고요한 유대감을 만끽했다. 계획되지 않은 야식과 목적 없는 대화, 그리고 함께 나누는 정적. 그 모든 무용한 것들이 모여 이번 여행을 꽤 괜찮은 기억으로 완성하고 있었다.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 편의점에서 파는 대만식 밀크티와 짭조름한 팝콘의 조합을 추천한다.
- 따뜻한 컵라면에 현지 소시지를 곁들여 먹으면 완벽한 마무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