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누가 먼저 잠들지 내기를 했다. 결국 내가 이겼고, 눈을 떴을 땐 이미 Ban Qiao Kai Sa Da Fan Dian 입구였다. 4월의 반차오 공기는 눅눅한 수건처럼 피부에 묵직하게 감겼다. 끈적이는 습기가 어깨 위로 내려앉았지만, 낯선 도시가 주는 설렘 때문인지 그 무게마저 다정하게 느껴졌다.
조식 뷔페에서 만난 작은 딤섬 하나. 투명한 피 너머로 갇혀 있던 육즙이 찰나의 순간 비쳤다. 젓가락으로 톡 건드리자 하얀 김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 뺨을 적셨다. 짭조름한 간장의 향과 밀가루의 포근한 온기가 혀끝에 오래 머물렀다. 화려한 만찬은 아니었지만, 위장을 따뜻하게 채우는 그 소박한 포만감이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야, 계획표는 대체 어디 있어?" 친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없는데. 그냥 온 거야." 우리는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이곳에 던져졌다. 쇼핑몰까지 걷는 고작 10분이 영겁의 시간 같다며 투덜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킥킥거렸다.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것, 그 무계획의 무질서함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32층 인피니티 풀. 인생 사진을 건지겠다며 온갖 각도를 잡던 녀석이 갑자기 중심을 잃고 발을 헛디뎠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우리는 10분 동안 배를 잡고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댔다. 미지근한 물의 온도와 적당히 흐린 하늘이 우리의 소란스러움을 너그럽게 감싸 안아주었다.
새벽 3시, 방 안에는 오직 낮은 숨소리만 남았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반차오의 야경은 검은 벨벳 위에 흩뿌려진 소금 결정처럼 반짝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이 정지된 시간 속에 박제되고 싶었다. 도시의 소음이 완전히 소거된 그 고요함이 역설적으로 가장 완벽한 휴식처럼 다가왔다.
빳빳하게 다려진 흰색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았다. 갓 세탁한 세제의 깨끗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Ban Qiao Kai Sa Da Fan Dian의 세련된 객실은 생각보다 넓었고, 침대 끝에서 화장실까지 걷는 짧은 동선 속에서도 공간의 여유가 느껴졌다. 넉넉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심감이 낯선 타지에서의 긴장을 천천히 녹여주었다.
예고 없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캔버스 운동화가 금세 젖어 발가락 사이로 축축한 냉기가 스며들었다. 하지만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로 진한 녹나무 잎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젖은 옷가지가 몸에 달라붙고 조금 춥게 느껴졌지만, 그 눅눅함조차 이 도시의 일부라는 생각에 그냥 걷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거창한 깨달음이나 의미를 찾지는 못했다. 그저 맛있는 것을 먹고, 깊게 잠들고, 32층 높이에서 도시의 소란을 내려다봤을 뿐이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층을 이루었다. 그 덧없는 시간의 축적이 나를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젖은 운동화 끝에 묻은 짙은 흙탕물 한 방울.
- 32층 인피니티 풀에서 멍하니 도시 야경 감상하기
- 체크아웃 전, 육즙 가득한 조식 딤섬 꼭 한 번 더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