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까"
"반딧불이 보러 갈까?"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5월의 가오슝은 성실하게 비를 뿌리고 있었다. "비 오는데." 내 대답은 짧았고, 공기는 눅눅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보았다. "그럼 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했던 일정들이 빗소리에 씻겨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오히려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빗소리가 지워준 여백, 그 안의 안온함
로비에 들어설 때 피부를 짓누르던 눅눅한 공기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메리어트 가오슝 호텔의 내부는 서늘하고 정돈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묵은 시티 뷰 클래식 룸은 생각보다 더 넓고 쾌적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두꺼운 카펫이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공간 전체가 소리를 흡수하는 덕분에 서로의 숨소리가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빳빳하게 당겨진 하얀 시트의 서늘한 감촉에 몸을 던지자, 적당한 탄성이 온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작은 섬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오슝의 회색빛 풍경이 오히려 방 안의 따스한 조명과 대비되어 아늑함을 더했다.
천장이 뚫린 실내 수영장은 이 호텔의 백미였다. 위에서 쏟아지는 빛이 물결 위에 잘게 부서져 은하수처럼 흩어졌다. 따뜻한 물속으로 천천히 몸을 밀어 넣자, 피부에 닿는 물의 촉감이 묵직하고 다정했다. 스파 시설에서 몸을 녹이고 나니, 밖의 습도는 더 이상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습함 덕분에 실내의 쾌적함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물속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같은 방향을 보고 떠 있었다. 물의 부력에 몸을 맡긴 채, 서로의 존재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배가 고파질 때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다른 투숙객과 마주치지 않고 빠르게 내려가는 정적의 시간조차 안락하게 느껴졌다. 호텔과 연결된 의향천지 쇼핑몰은 비를 피하기에 완벽한 요새였다. 우산을 펴고 접는 번거로움 없이, 우리는 슬리퍼를 끌고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시장에서 산 복숭아 하나를 베어 물자, 진한 단맛이 입안 가득 고였다. 과하게 달지 않고 묵직한 풍미가 혀끝에 남았다. 33층 라운지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비에 젖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건물들의 윤곽이 빗줄기 때문에 뭉툭해 보였지만, 그 흐릿함이 오히려 낭만적이었다. 무용한 시간이 주는 즐거움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침대, 따뜻한 물, 그리고 내 옆의 온기. 메리어트 가오슝 호텔에서의 이 모든 조각이 겹쳐져 꽤 괜찮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창가에 맺힌 빗방울이 천천히 아래로 투명한 길을 만들고 있었다.
- 비 오는 오후, 연결된 쇼핑몰에서 달콤한 디저트를 사서 객실에서 함께 나누어 보세요.
- 이른 아침, 고요한 수영장에서 쏟아지는 빛을 맞으며 천천히 헤엄쳐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