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다섯 가지의 조각들
십오 미터 거인과의 유치한 눈싸움: 러브 리버 베이에서 마주친 울트라맨은 생각보다 훨씬 압도적인 크기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솔직히 너가 더 닮지 않았냐?"라는 말 한마디에 시작된 유치한 내기는 결국 누구의 승리도 없이 엉망진창으로 끝났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한참을 배꼽 잡고 웃었다. 2월의 가오슝 바람은 짭조름한 바다 내음을 머금고 있었고, 거대한 장난감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그 찰나의 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순수하게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딤섬 바구니 속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 Han Xuan Guo Ji Da Fan Dian에서 즐긴 홍콩식 애프터눈 티는 예상보다 훨씬 강렬한 미식의 습격이었다. 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대나무 찜기 속에서 투명한 피부를 뽐내는 새우 딤섬을 발견한 순간, 우리는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를 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결국 배가 터질 듯 불러 마지막 만두 하나를 두고 가위바위보를 했지만, 진 사람이 계산하기로 했던 약속은 이미 포만감 속에 잊힌 지 오래였다.
발소리를 집어삼킨 두툼한 카펫의 안도감: 호텔 복도를 걸을 때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카펫의 묵직한 질감이 묘하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소리를 완전히 흡수해버리는 두꺼운 카펫 덕분에 우리는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복도에서 소곤거리며 장난을 쳤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폭포수 같은 강력한 샤워기 수압에 "와, 이게 진짜 럭셔리지!"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최신식의 세련됨보다는 잘 닦인 나무 가구와 빳빳하게 다려진 시트가 주는 올드스쿨 특유의 정갈함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사십이 층에서 마주한 서늘하고 투명한 공기: 고공 바에서 내려다본 가오슝의 밤은 누군가 실수로 쏟아버린 보석함처럼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차가운 칵테일 잔에 맺힌 이슬이 손가락을 타고 서늘하게 흘러내렸고, 우리는 특별한 대화 없이 한동안 도시의 불빛들이 만드는 파노라마를 응시했다. '여기 진짜 좋다'라는 짧은 진심 한마디면 충분했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같은 풍경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질서 정연한 식탁 위로 흐르는 아침의 온기: 조식 뷔페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해 구역을 엄격하게 나눈 셰프의 꼼꼼한 배려를 보고 작은 놀라움을 느꼈다. 우리는 각자의 접시에 좋아하는 음식들을 무질서하게 담아냈지만, 그 무질서함이야말로 계획 없는 여행이 주는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갓 구운 크루아상의 고소한 버터 향과 직원들이 건네는 다정한 목례가 2월의 서늘한 아침 공기를 적당히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이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완성된 풍경
사실 이번 여행에서 거창한 깨달음이나 인생의 정답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온전히 누워 있고 싶었을 뿐이다. Han Xuan Guo Ji Da Fan Dian의 넓고 포근한 침대에 몸을 던졌을 때 느껴지던 그 안락함, 그리고 친구들과 유치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던 시간들. 어쩌면 아무런 쓸모 없는 것들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정체일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헤맸던 일정,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마주친 낡은 골목의 정취, 그리고 호텔 방에 모여 앉아 나누어 먹던 과자 봉지의 바스락거림. 그런 작은 조각들이 겹겹이 쌓여 '꽤 괜찮은 여행'이라는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 투덜거리면서도 체크아웃을 하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정도의 여운이면 충분히 성공적인 여행이었다.
창밖으로 2월의 옅은 햇살이 하얀 커튼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 42층 고공 바에서 도시의 야경을 배경 삼아 시원한 칵테일 한 잔을 즐겨보길.
- 호텔 인근의 보어2 예술특구까지 천천히 걸으며 골목마다 숨은 색깔을 찾아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