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의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이 발바닥에 닿는 순간, 소름 돋는 냉기가 전신으로 퍼졌다. 친구와 누가 더 빨리 체크인을 마칠지 유치한 내기를 했다. 결과는 무승부. Fu Rong Da Fan Dian의 강력한 에어컨 바람이 땀으로 젖은 등줄기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눅눅한 공기를 단숨에 걷어내는 그 쾌적함이 꽤 근사한 시작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돼지피 국을 마주했다. 뜨거운 증기가 안경알을 하얗게 덮어 세상이 잠시 지워졌다. 쫄깃한 내장의 식감과 짭조름한 국물이 혀끝에 닿자 비로소 가오슝에 왔음이 실감 났다. 9월의 습한 공기 속에서 들이켜는 뜨거운 국물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이게 정말 네가 말한 모험이야?" 친구가 땀을 닦으며 물었다. "걷는 것 자체가 모험이지." "이건 그냥 육체적 고통이야." 우리는 보어 2 예술특구까지 걷기로 했다. 끈적이는 공기 속에서 서로의 투덜거림을 배경음악 삼아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서로의 옷에서 배어 나오는 땀 냄새를 맡으며 걷는 것, 그것이 우리의 우정이었다. "야, 너한테서 진짜 진한 가오슝 냄새 난다." "너는 이미 인간 찜통이야." 낄낄거리며 걷는 길 위에서 우리는 가장 솔직하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서로를 비웃었다.
19층 객실, 하얀 시트 위에 몸을 던졌다. 바스락거리는 면의 감촉이 귓가를 채웠고, 몸은 솜사탕처럼 침대 속으로 깊게 고요해졌다. 호텔 내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고 온 뒤라 그런지, 방 안의 정적마저 포근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가오슝 항구의 풍경은 거대한 정물화 같았다. 무채색의 크레인들이 정지 화면처럼 서 있었고, 거대한 배들이 느릿느릿 물결을 갈랐다. Fu Rong Da Fan Dian의 높은 층고에서 내려다보는 항구는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다른 차원 같아, 그 무용한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
지도 앱이 우리를 엉뚱한 골목으로 안내했다. 목적지와는 정반대 방향이었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좁은 골목 끝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름 모를 작은 카페. 볶은 원두의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고, 계획에 없던 그 커피 한 잔은 여행 중 가장 달콤한 우연이었다.
3일치 짐을 챙겼지만 정작 쓴 건 절반뿐이었다. 캐리어 속에 남은 옷가지들을 보며 생각했다. 삶은 원래 이렇게 조금 모자라거나 남는 법이라고. 가오슝의 9월은 충분히 따뜻했고, 내 마음의 빈틈을 채우기에 그 온도는 적당했다.
항구의 불빛이 밤바다 위에서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 항구 전망 객실에서 멍하니 배 구경하며 멍 때려봐
- 체크아웃 후 사랑의 강변을 따라 느긋하게 산책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