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다섯 가지 순간들
항구의 첫 줄에서 마주한 시야. Fu Rong Da Fan Dian의 객실 창문을 열자마자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함께 가오슝 항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1월의 하늘은 잉크를 풀어놓은 듯 짙은 파란색이었고, 수평선 너머 거대한 화물선들이 둔탁한 경적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정교한 미니어처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저 배, 정말 움직이는 거 맞아?"라는 친구의 물음에 우리는 누가 먼저 움직일지 내기를 걸었고, 결국 아무도 맞히지 못한 채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계획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이토록 쾌적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일렁였다.
15미터의 압도적인 황당함. 겨울 유원지에서 마주한 울트라맨 설치물은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였다. 정오의 강렬한 햇살을 받아 눈이 시릴 정도로 번쩍이는 은색 피부 앞에 서자, 우리는 정말 발밑의 작은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저 거인이 우리 호텔까지 지켜줄 것 같지 않아?"라는 엉뚱한 농담에 우리는 동시에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억지로 감동을 짜낼 필요 없이, 그저 그 압도적인 크기가 주는 생경함과 황당함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순간이었다.
옌청 거리의 눅눅하고 진한 향기. 호텔 문을 나서면 곧바로 옌청구의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오래된 콘크리트의 눅눅한 냄새와 정체 모를 향신료의 알싸한 향이 차가운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지도조차 접어둔 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돼지피 국밥집에서, 20도의 선선한 바람을 뚫고 들이킨 뜨거운 국물은 입안 가득 정직하고 깊은 풍미를 전했다. 화려한 맛집 리스트에는 없었지만, 길을 잃고 헤매다 마주한 그 소박한 한 그릇이 이번 여행의 가장 진한 기억으로 남았다.
겨울 햇살 아래의 야외 수영장. 계절을 잊은 듯 야외 수영장의 물결은 온몸을 감싸는 따스함이 있었고, 피부에 닿는 공기는 기분 좋게 서늘했다. 우리는 수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중력을 잊고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천천히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물 위에 누워 바라본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갔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물의 온도가 체온과 맞닿는 그 나른한 감각 속에서, 누워있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을 보냈다.
바스락거리는 시트 속의 정적. 2만 보가 넘는 걸음 끝에 돌아온 Fu Rong Da Fan Dian의 침대는 지나치게 포근했다. 갓 햇볕에 말린 빨래처럼 뽀송뽀송한 향기가 나는 하얀 시트 속에 몸을 파묻자, 팽팽하게 긴장했던 온몸의 근육이 스르르 풀렸다. 에어컨의 낮은 웅웅거림과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이 적당한 백색소음이 되어 우리를 포근하게 감쌌다. "행복하다"는 말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져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누워 있었고, 그 깊은 정적이 그 어떤 대화보다 더 많은 위로를 건넸다.
흩어진 조각들이 모여 완성된 풍경
이 장면들은 거창한 서사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해변에 흩어진 조개껍데기처럼 단편적인 기억들일 뿐이다. 하지만 가득 채워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숨 쉴 틈이 있어 편안했다. 1월의 가오슝은 생각보다 관대했고, 이곳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아늑한 항구였다. 투덜거리며 걸었던 거리와 황당했던 거인, 그리고 따뜻했던 물의 감촉. 이런 무용한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결국 '다시 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만들어냈다. 삶은 꼭 특별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적당히 따뜻하고 편안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랑 강의 은은한 불빛이 창가에 보석처럼 맺혀 있었다.
- 호텔 인근 옌청구 골목의 로컬 식당에서 진한 돼지피 국밥을 맛보세요.
- 겨울 유원지의 15미터 울트라맨 설치물 앞에서 엉뚱한 인증샷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