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사라지는 마법의 숲
손끝에 닿은 Fu Rong Da Fan Dian 로비의 대리석 바닥은 기분 좋게 미지근했다. 2월의 가오슝은 21도.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히 나른한 온도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옌청구의 붉은 벽돌 담벼락을 타고 흐르던 오후의 햇볕이 아이의 옷깃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이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어른들의 시선이 닿는 웅장한 층고나 화려한 샹들리에 같은 건 아이의 관심 밖이었다. 아이의 온 세상은 바닥에 깔린 두툼하고 푹신한 카펫에 고정되었다. 한 발을 쓱 밀어 넣더니 눈을 크게 뜬 아이가 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엄마, 내 발가락이 사라졌어!" 발가락이 카펫 속으로 조금씩 잠기는 모습이 신기했나 보다. 아이는 그것을 '발가락이 사라지는 마법'이라고 불렀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카펫 위에서 작은 발걸음으로 동그란 원을 그렸다. 엘리베이터 버튼의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 질감이 좋았는지, 손가락으로 버튼을 톡톡 건드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층수 버튼을 누를 때마다 거대한 건물이 자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 아이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짐 가방의 가죽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별거 아닌 찰나의 순간에 온 정신을 쏟는 아이의 순수함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내 마음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철제 거인들의 나라와 작은 탐험가
객실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방 한구석에 놓인 낮은 소파로 달려갔다. 아이는 그곳을 자신의 비밀 영토로 선포하고는 엎드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엄마, 저기 봐! 바다 위에 섬들이 둥둥 떠다녀!" 아이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본 곳에는 거대한 컨테이너선과 하역 크레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가오슝 항구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내 눈에는 그저 무채색의 철제 구조물들이었지만, 아이에게 그것들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정거장이자 잠들어 있는 철제 거인들이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러브 리버의 윈터 원더랜드를 걸었다. 15미터 높이의 울트라맨 조형물이 압도적인 위용으로 서 있었다. 아이는 그 거대한 발가락 앞에 서서 자신의 작은 키를 쟀다. 한참을 까치발로 서서 끙끙거리더니, 이제 거의 다 따라잡았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의 작은 성취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 골목에서 맛본 돼지피 수프의 진하고 눅진한 국물 맛이 입안에 여운처럼 남았다. 뜨거운 김이 아이의 안경알을 하얗게 덮자, 아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낄낄거렸고, 나는 그 맑은 웃음소리를 배경 삼아 2월의 가오슝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아내려 애쓰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이의 숨소리가 남긴 고요한 여백
아이가 깊은 잠에 빠져들고 나서야 방 안에는 비로소 진짜 정적이 찾아왔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마치 잔잔한 파도 소리처럼 리듬감 있게 들렸다. 나는 Fu Rong Da Fan Dian의 창가로 다가가 묵직한 커튼을 살짝 걷었다. 19층에서 내려다보는 가오슝 항구는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러브 리버를 따라 켜진 오색빛 불빛들이 검은 물결 위에 길게 늘어져 보석처럼 반짝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폭죽 소리가 밤공기의 밀도를 조금 더 촘촘하게 만들었다. 욕실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하고 향긋한 바디워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침대에 몸을 뉘자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리넨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았다. 처음에는 차갑게 느껴졌지만, 이내 체온이 스며들며 포근한 온기로 변했다. 목 뒷부분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베개의 높이가 완벽했다. 삶이 매 순간 특별할 필요가 있을까. 좋은 베개를 베고, 사랑하는 이가 곁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으며, 창밖으로 고요한 항구의 야경이 보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용한 것들이 주는 지극한 안락함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내일 아침 다시 마주할 그 미지근한 햇볕을 상상했다. 다시 이곳에 와도 좋겠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항구의 불빛이 커튼 틈으로 천천히 잦아들었다.
- 아이와 함께 러브 리버의 거대 울트라맨 조형물 옆에서 키 재기 인증 사진을 남겨보세요.
- 항구 전망 객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지나가는 배의 이름을 함께 맞히는 놀이를 즐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