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걸음의 여백, 그 안의 안도감
He Yi Fan Dian Gao Xiong Zhong Shan Guan의 30층 로비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바닥에 길게 누운 12월의 꿀빛 햇살이었다. 창가에서 침대까지는 대략 세 걸음 정도의 거리. 당신은 홀린 듯 창가로 다가갔고, 나는 문 근처에 멈춰 서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세 걸음의 간격이 마치 우리 사이의 가장 적당한 거리처럼 느껴졌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딱 이만큼의 여백이 필요했어.' 나는 속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미니멀한 인테리어는 군더더기 없이 정갈했고, 흰 벽과 가구들이 빛을 반사하며 방 안을 온화하게 채우고 있었다. 발바닥에 닿는 카펫의 도톰한 촉감은 외부의 소음을 모두 흡수해 버린 듯 고요했고, 그 정적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방해하지 않는 각자의 위치를 찾았다. 방 한 켠에 놓인 매끄러운 곡선의 달걀 모양 욕조는 마치 이 공간의 긴장을 완화해 주는 작은 섬 같았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우리는 그저 공간이 주는 안도감 속에 몸을 맡겼다. 당신이 창밖의 풍경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을 때, 나는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 당신이 느끼는 평온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찻잔의 온기로 읽어내는 무언의 대화
더 라운지의 통창 너머로 가오슝의 도심과 푸른 항구의 전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졌다. 압도적인 층고와 넓은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은 우리의 마음마저 환하게 열어주는 듯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마셨다. 컵을 쥐고 있는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온기가 12월의 나른한 공기와 섞여 기분 좋게 퍼졌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도시의 소음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찰나의 순간, 우리는 동시에 같은 방향의 낯선 건물로 시선을 옮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리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동질감과 함께 가슴 벅찬 충만함을 주었다. 조식 테이블 위에 놓인 다채로운 과일들의 선명한 색감과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낮은 대화 소리들은 기분 좋은 배경음악이 되어 우리를 감쌌다. '좋다'라는 말은 때로 너무 가벼워 그 순간의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 커피가 조금씩 식어가는 속도에 맞춰 우리의 마음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각자의 고요가 맞닿는 시간
호텔을 나서 보어2 예술특구로 향하는 길, 21도의 쾌적한 공기는 걷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거대한 울트라맨 조형물 앞에 섰을 때, 우리는 그 압도적인 크기에 잠시 말을 잃었지만 이내 나란히 서서 그 기묘한 풍경을 즐겼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화려한 조명들이 보석처럼 거리마다 걸려 있었고, 당신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에 시선을 빼앗겼으며 나는 그런 당신의 옆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우리는 함께 걷고 있었지만, 각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서로 달랐다. 하지만 그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존중이었다. 각자의 고요함을 유지하면서도 맞잡은 손의 온기만으로 충분한 시간. 근처에서 산 밀크티의 진한 달콤함이 혀끝에 남고, 종이 컵 홀더의 거친 질감이 손가락에 닿았다. 다시 He Yi Fan Dian Gao Xiong Zhong Shan Guan으로 돌아와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당신은 휴대폰 속 세상에 몰입했고, 나는 읽다 만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머무는 이 적당한 소외감이 오히려 우리를 더 단단하게 연결해주었다. 억지로 연결되려 애쓰지 않아도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완벽한, 관계의 가장 편안한 상태였다.
가오슝의 밤이 깊어갈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침묵을 사랑했다.
- 보어2 예술특구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서로를 닮은 작은 소품을 찾아보세요.
- He Yi Fan Dian Gao Xiong Zhong Shan Guan의 30층 로비에서 가오슝의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