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분명 어댑터 안 가져왔지?"
"뭐? 가져왔는데!" 지수가 빽 소리를 질렀다. 나는 가만히 지수의 열린 캐리어를 훑었다. 텅 빈 구석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거짓말 마. 아까 짐 쌀 때 없었잖아." 내 말에 지수가 멈칫했고, 옆에서 민호가 낄낄거리며 거들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이번 여행 최고의 수확은 지수의 건망증이야." "아, 진짜! 어디 뒀더라?" 지수가 가방을 다시 뒤엎자 옷가지들이 폭포처럼 바닥으로 쏟아졌다. 우리는 그 꼴을 보며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여행의 유일한 정답 같았다. 서로를 탓하며 짐을 푸는 소란함이 방 안을 가득 채웠지만, 그 소음조차 기분 좋은 리듬처럼 느껴졌다.
소란함이 잦아든 항구의 안식처
우리가 묵은 Cheng Yi Jiu Dian의 럭셔리 룸은 마치 가오슝 항구의 고요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안식처였다. 문을 열자마자 쾌적한 공기가 피부를 감쌌고, 절제된 조명과 차분한 톤의 가구들이 들떴던 마음을 차분히 고요해지혔다. 160센티미터 너비의 침대는 바스락거리는 고급 침구의 촉감이 마치 부드러운 파도처럼 몸을 감싸 안았다. 적당히 팽팽하면서도 포근한 그 감촉에 몸을 던지자, 일상의 피로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욕실에서는 아원 세트의 은은한 풀 내음이 숲속의 새벽 공기처럼 퍼졌고, 맞춤형 욕조에 채워진 따뜻한 물은 찰랑이는 소리로 욕실 안을 리듬감 있게 채웠다. 다이슨 슈퍼소닉 드라이기의 강력한 바람이 젖은 머리카락을 빠르게 말려주는 동안, 방 한쪽의 네스프레소 머신에서는 짙은 커피 향이 볶아져 나와 공간의 밀도를 높였다. 65인치 대형 텔레비전과 똑똑한 소미시 스마트 시스템이 우리의 말에 묵묵히 반응하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가오슝 항구의 풍경은 정지된 수채화처럼 평온했다. 11월의 햇살은 날카롭지 않게, 그저 다정한 온기로 방 안 깊숙이 스며들어 무용한 시간의 달콤함을 일깨워주었다. 공간이 주는 여유는 생각보다 힘이 셌고, 우리는 그 안에서 비로소 완전한 휴식을 찾았다.
새벽 두 시, 낮은 목소리들의 온도
"11월 가오슝은 생각보다 다정하네." 민호가 창가에 기대어 나직이 말했다. 낮의 소란함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는 낮은 조명과 깊은 정적만이 남았다. "응, 덥지 않아서 정말 좋아." 지수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대답했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놀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평소라면 묻어두었을 진심들을 하나둘 꺼내 놓았다.
"그냥 여기 계속 누워있고 싶다."
"나도. 내일 체크아웃 하기 싫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것은 지루함이 아니라, 완벽한 충만함에서 오는 안도의 숨이었다. 밖에서는 간간이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지만, 두꺼운 유리창이 그 소리를 적당히 걸러내어 우리만의 작은 섬을 만들어주었다. 방 안의 온도는 정확히 24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온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거창한 약속이나 다짐은 없었지만, 지금 이 포근한 침구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창밖 항구의 불빛이 밤바다 위로 느리게 깜빡였다.
- Cheng Yi Jiu Dian의 옥상 인피니티 풀에서 가오슝의 야경을 내려다보세요.
- 호텔 로비의 복고풍 잠수함 수조에서 바다의 낭만을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