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엉뚱함을 묵묵히 지켜본 다섯 가지 증거물
다이슨 슈퍼소닉: 윙윙거리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눅눅한 아침 공기. 알람을 끄고 한참을 더 뭉개고 있던 우리의 게으름을 가장 먼저 목격했다. 젖은 머리를 말리며 오늘 어디를 갈지 정하지 못한 채 서로의 멍한 얼굴만 쳐다보던 그 정적, 그리고 바람 소리에 묻힌 깊은 하품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네스프레소 캡슐 머신: 쌉싸름한 커피 향과 낮게 깔리는 기계의 진동음. 새벽 2시, 잠들지 못한 이들이 멍한 표정으로 캡슐을 밀어 넣던 순간을 기억한다. 기계가 내는 소음보다 더 진했던 것은 "내일 일정 다 취소하고 그냥 여기서 뒹굴까?"라는 무책임하고도 달콤한 합의였다.
65인치 스마트 TV: 매끄러운 검은 유리 표면과 화려한 픽셀의 빛. 화면 속 영상보다 그 앞에 널브러진 우리의 뒷모습을 더 많이 보았을 것이다. 결국 무엇을 볼지 정하지 못하고 꺼진 검은 화면에 비친, 입을 벌리고 잠든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얼굴들을 비웃듯 비추고 있었다.
이노치 전자 비데: 피부에 닿는 온수와 정적 속의 작은 물소리. 하루 종일 가오슝 시내를 걷고 돌아와 비로소 마주한 안식의 순간. 따뜻한 물줄기와 함께 터져 나온, 가장 은밀하고 정직한 안도의 한숨을 모두 듣고 있었을 것이다.
폭신한 흰색 침구: 바스락거리는 면의 감촉과 나마샤에서 사 온 복숭아의 달콤한 잔향. 길거리 음식의 부스러기와 기절하듯 뻗어버린 몸뚱이들이 만들어낸 무질서한 풍경. 시트 위에 흩어진 과자 봉지들이 마치 우리가 치열하게 쟁취한 전리품처럼 보였다.
이 물건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말한다면
이 공간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우리를 '품격 없는 침입자들'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19평의 넉넉한 공간은 우리가 마음껏 소란스러울 수 있는 허락처럼 느껴졌다. 3월의 가오슝 공기는 눅눅하게 뭉쳐진 밀가루 반죽 같았다. 피부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웠고, 그 습함이 오히려 우리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228 연휴의 인파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간 식당에서 먹은 아류이 돼지피국은 생각보다 뜨거웠고, 그 투박한 맛이 여행의 갈증을 씻어내 주었다.
나마샤의 숲속에서 반딧불이를 쫓으며 엉뚱한 곳으로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서로의 길치 본능을 탓하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야, 여기가 맞다니까!"라고 외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돌아오는 길에 샀던 복숭아 상자가 방 안 가득 달콤한 향을 뿌렸고, 우리는 그 향기 속에 파묻혀 아무런 계획 없이 누워 있었다. Cheng Yi Jiu Dian의 정갈한 인테리어와 우리의 무질서함이 충돌하는 지점이 꽤나 즐거웠다. 루프탑 인피니티 풀의 푸른 물결이 창밖으로 아른거렸지만, 정작 우리는 편의점에서 산 과자 봉지를 뜯으며 "내일은 그냥 늦잠 자자"고 속삭였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전부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창밖으로 가오슝의 밤이 보랏빛 물감처럼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 나마샤의 반딧불이와 복숭아 시즌을 놓치지 말고 방문할 것.
- Cheng Yi Jiu Dian의 넉넉한 가족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