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은 서늘한 무채색의 위로
노출 콘크리트 벽. 매끄럽고 단단한 질감. 빛을 빨아들이는 무광의 회색빛. 손바닥을 가만히 대면 체온이 빠르게 뺏기며 서늘함이 전해진다. 6월의 화롄은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습기로 가득했지만, Lai Chuang Xing Lv의 벽면은 정직하고 차가웠다. 장식 없는 면이 주는 단조로움이 오히려 소란스러운 마음을 고요해지혔다. 습기를 머금지 않은 그 서늘한 촉감에 등을 기대고 서 있으면, 창밖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더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들려왔다.
적당한 온도와 게으름의 대화
"여기서 야시장까지 얼마나 걸어?" 그가 스마트폰 지도를 살피며 물었다. 나는 빳빳한 호텔 침구 속에 몸을 파묻은 채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다. "10분 정도. 그냥 천천히 걸어갈 만해." "지금 나가면 너무 덥지 않을까. 습도가 80퍼센트래." "그럼 조금 더 누워 있자. 덥고 습한 게 여름이니까."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 옆으로 조심스럽게 누웠다.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이 피부에 닿아 쾌적한 전율이 일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계획을 세워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서로의 숨소리와 정적만이 남았다. 10분 거리의 야시장보다, 지금 이 방의 적당한 온도가 우리에겐 더 절실했다.
무용한 시간들이 쌓여 만든 기억의 무늬
여행의 목적이 꼭 무언가를 보고 기록하는 것에 있을 필요는 없다. 때로는 좋은 침대에 누워 시간을 속절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가장 밀도 높은 활동이 된다. Lai Chuang Xing Lv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처럼, 우리는 이곳에서 기꺼이 늦잠을 잤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6월의 햇살은 지나치게 눈부셨지만, 방 안의 차분한 회색 톤이 그 빛을 부드럽게 눌러주어 아늑한 명암을 만들어냈다.
로비의 작은 도서관에서 풍기던 은은한 종이 냄새와 커피 향은 체크인 순간부터 우리를 무장 해제시켰다. 라운지의 안락한 의자에 몸을 맡기고 책장을 넘기던 시간은, 바깥세상의 속도와는 완전히 단절된 우리만의 섬 같았다. 욕조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창밖을 보았을 때, 태평양의 짙은 푸른색이 방 안으로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파란색의 농도가 짙어졌다 옅어졌다를 반복했다. 특별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피부를 감싼 물의 온도가 적당했고, 몸을 지탱해 주는 수압이 다정한 포옹처럼 느껴졌다. 젖은 머리를 말리기 위해 드라이기를 켰을 때, 강한 바람 소리가 주변의 정적을 오히려 더 깊게 각인시켰다.
아침 식사는 소박하지만 다정했다. 주인 부부가 정성껏 준비한 공정바오즈가 김을 모락모락 내며 나왔다. 함께 제공된 특제 간장은 일반적인 간장보다 훨씬 깊고 진한 풍미를 품고 있었다. 바오즈를 살짝 찍어 입에 넣으니 따뜻한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고, 뒤이어 마신 계화꿀 홍차의 달콤함이 끝맛을 깔끔하게 갈무리했다. 화려한 뷔페는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온기가 담긴 음식이라는 것이 맛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리는 호텔 근처 북빈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옅은 소금기가 섞여 있었고, 6월의 태양은 뜨거웠지만 우리는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누군가 '힘내라'거나 '더 열심히 돌아다녀라'고 재촉하지 않는 여행. 그냥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지치면 그 자리에 멈춰 서는 시간. 무용한 것들이 주는 해방감이 생각보다 컸다. 체크아웃을 하며 다시 한번 그 회색 벽에 손을 댔다. 여전히 서늘했다. 우리는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그때도 똑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것이 우리가 찾은 이 여행의 가장 찬란한 수확이었다.
푸른 바다가 창틀에 걸려 있던, 어느 오후의 조각.
- 동다먼 야시장은 도보 10분 거리이니, 저녁 식사 후 가볍게 산책하듯 다녀오길 권한다.
- 해경 객실의 욕조에서 바라보는 태평양 뷰는 이 호텔의 백미이므로 반드시 예약 시 확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