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정직함과 태평양의 선명한 조우
첫째가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왜 벽이 온통 차가운 시멘트 색이냐고. Lai Chuang Xing Lv의 벽은 꾸밈없이 매끄러운 회색이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삭막하거나 차갑다고 말하겠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정직해 보였다. 어떤 화려한 장식으로도 가릴 수 없는, 콘크리트 본연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 공간. 그 무채색의 정적 속에 몸을 뉘이고 커튼을 걷어 올린 순간, 1월의 태평양이 거대한 파도처럼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회색 벽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짙은 파란색의 바다. 아이들은 그 색깔이 너무나 진하고 선명해서 마치 누군가 물감을 풀어놓은 가짜 같다고 떠들었다. 나는 그저 침대 끝에 걸터앉아 그 강렬한 색의 대비를 가만히 응시했다. 화려한 가구 하나 없는 방이었지만, 창틀이라는 프레임 속에 완벽하게 갇힌 바다 풍경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했다. 굳이 무언가를 더 채워 넣을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이 밀려왔고, 비로소 마음의 소음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흐르는 다정한 소음들
겨울의 화롄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하지만 호텔의 복도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작은 소리들로 일렁였다. 옆방에서 새어 나오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와 복도를 가볍게 뛰어다니는 발소리들이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타고 낮게 공명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정적을 깨는 소음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 소리들이 이 무거운 회색 공간을 조금은 말랑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온기처럼 느껴졌다. 밤늦게 동대문 야시장을 다녀오는 길,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거리의 활기가 차가운 밤바람에 섞여 귓가를 스쳤다.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그 적당한 거리감이 여행자의 긴장을 적절히 유지시켜 주었다. 방으로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쏴아아 하며 쏟아지는 물소리가 방 안의 빈틈을 촘촘히 채웠고, 어느새 지쳐 잠든 아이들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그 위에 겹쳐졌다. 서로 다른 층위의 소리들이 포개어지며 비로소 완벽한 휴식의 밤이 완성되었다.
서늘한 벽과 뜨거운 물이 만나는 경계의 촉감
깊은 욕조에 몸을 담갔다. 1월의 매서운 바닷바람에 뻣뻣하게 굳어 있던 어깨 근육이 뜨거운 온기 속에서 천천히 풀려나갔다. 물의 온도는 뜨거웠지만, 피부에 닿는 감촉은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욕조 너머로 투명한 밤하늘의 별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아이들은 욕조 벽면을 작은 손으로 쓸어보더니, 마치 매끄럽게 닦인 강가의 돌 같다고 말했다. 노출 콘크리트 특유의 서늘하면서도 단단한 촉감. 하지만 그 차가운 벽 위에 닿은 내 손바닥은 온천수 덕분에 기분 좋게 달아올라 있었다. 차가운 벽과 뜨거운 물, 그 이질적인 두 온도가 내 몸의 경계에서 충돌하고 섞이는 느낌이 묘하게 안온했다. 욕조에서 나와 침대에 누웠을 때, 피부에 닿는 시트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적당한 무게감으로 몸을 눌러주는 이불의 압박감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더 이상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은, 기분 좋은 무력감이 찾아왔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 굳어버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평온이었다.
혀끝에 피어난 소박하고 정직한 온기
아침 식탁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공정바오즈가 올랐다. 뽀얀 빛깔의 찐빵을 본 둘째가 젓가락으로 빵을 쿡 찌르며 이게 무엇인지 물었다.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자, 가둬져 있던 뜨거운 육즙이 입안 전체로 화하게 퍼졌다. 함께 곁들여 나온 매콤한 소스를 살짝 찍어 먹으니, 자칫 밋밋할 수 있었던 맛에 생생한 생기가 돌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혀끝을 툭 치고 지나가는 그 알싸한 맛이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웠다. 아이들은 쌉싸름한 커피보다 입가에 하얀 가루를 묻히며 먹는 달콤한 티라미수를 더 좋아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나 역시 따뜻한 커피 한 모금으로 아침을 열었다. 화려한 호텔의 조식 뷔페는 아니었지만, 주인 부부가 정성껏 준비한 소박한 메뉴들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특별한 기교는 없었지만,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재료 본연의 정직한 맛이 마음을 채웠다. 배가 든든해지자 비로소 창밖의 풍경이 다시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래된 책 향기와 소금기 머금은 겨울바람
체크아웃을 하고 문밖으로 나선 순간,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진한 계절의 냄새였다. 1월의 화롄 바다는 짙은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다. 차가운 북동풍이 뺨을 스치며 비릿하면서도 상쾌한 바다 내음을 실어 왔다. 호텔 로비의 작은 도서관에서 나던 은은한 오래된 책 냄새와 갓 볶은 커피 향이 어느새 사라지고, 야생의 거친 냄새가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겨울 안개가 웅장한 산맥의 윤곽을 흐릿하게 지우고 있었고, 그 사이로 어디선가 옅은 나무 타는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아이들은 코를 킁킁거리며 바다 냄새가 난다며 즐거워했다. 그 냄새의 이정표를 따라 북빈공원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화려한 향수는 아니지만, 이곳이 화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하고도 정직한 신호였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바라본 Lai Chuang Xing Lv의 회색 건물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서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
회색 벽 너머로 파란 바다가 계속 일렁이고 있었다.
- 동대문 야시장까지는 천천히 걸어가 보세요. 밤공기가 생각보다 쾌적합니다.
- 조식으로 나오는 공정바오즈에 매콤한 소스를 듬뿍 곁들여 드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