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시계가 먼저 말을 걸어온 자정
`Li Xiang Jiu Dian`의 상징인 거대한 시계탑이 밤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10월의 화롄은 예상보다 훨씬 쌀쌀했다. 습도는 낮아졌고, 건조한 바람이 뺨을 스칠 때마다 얇은 겉옷 속으로 한기가 스며들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호텔 앞 동대문 야시장의 불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이번 여행의 유일한 목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기에, 야시장에 나가는 행위 자체가 우리에겐 꽤나 과감한 모험이었다. 원주민 거리의 짙은 나무 향과 대나무 냄새가 섞인 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고, 붉은 등불이 일렁이는 거리의 소란함이 우리를 끌어당겼다. 화롄 향편식에서 매콤한 홍유초수를 샀고, 이름 모를 노점에서 꼬치 몇 개를 더 챙겼다. 비닐봉지 속에서 전해지는 음식의 뜨거운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온몸으로 퍼졌다.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설 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킥킥거렸다. 배가 고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 여행에서 가장 솔직하고 인간적인 순간이었다.
눅눅한 튀김과 함께 나눈 무용한 진심들
"내일 새벽 6시에 타이루거 국가공원 가기로 한 거, 기억은 나지?"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있던 친구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붉은 기름이 밴 홍유초수를 입에 넣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기억은 하는데, 갈 생각은 전혀 없어."
방 안에는 짧지만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노베이션된 `Li Xiang Jiu Dian`의 객실은 짙은 푸른색 벽지가 인상적이었다. 그 색은 마치 방금 보고 온 태평양의 심해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깊고 아늑했다. 우리는 거위털 침구 속에 몸을 반쯤 파묻은 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야식들을 나눠 먹었다. 바삭함이 조금 사라진 튀김의 식감이 오히려 정겨웠다.
"솔직히 말해봐. 우리 오기 전에 짠 일정표, 그냥 장식이었지?"
"당연하지. 그냥 적어놓으면 뭔가 대단한 계획을 세운 기분이 들잖아."
우리는 서로의 게으름을 칭찬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는 욕조 너머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환상적이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침대가 너무 푹신해서 이대로 영원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투덜거렸다. 우리는 대단한 깨달음이나 인생의 전환점 같은 건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이 넓은 방에서, 조금은 눅눅해진 튀김을 씹으며, 내일은 또 얼마나 늦게 일어날지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근데 이 초수, 생각보다 맵네." 누군가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물컵을 찾았다. 왁자지껄한 소음이 푸른 벽에 부딪혀 부드럽게 흩어지는, 완벽하게 무용한 시간이었다.
접시가 비워진 뒤 찾아온 밀도 높은 고요
음식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기름기가 묻은 휴지 몇 장만이 남았다. 뜨거웠던 대화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침대 구석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방 안의 조명을 낮추자, 푸른색 벽면은 더 깊은 바다처럼 보였고 우리는 그 바다 속에 잠긴 작은 섬이 된 기분이었다. 창밖으로는 화롄 시내의 소음이 아주 멀게,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잠시 일어나 욕조 쪽으로 다가갔을 때, 바닥에서 들려오는 작은 삐걱거림이 오히려 이 공간의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욕조에 몸을 담그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지만, 결국 다시 포근한 침대로 돌아왔다. 10월의 밤바람이 창문 틈으로 아주 조금 스며들어 왔고, 거위털 이불의 묵직한 포근함이 발끝까지 덮였다. 특별할 것 없는 밤이었지만, 그 평범함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무언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냥 여기 이렇게 누워 있다는 사실만으로 여행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는 대신, 짧은 코골이 소리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푸른 방의 조명이 천천히 꺼지고, 우리는 깊은 잠 속으로 고요히 머무했다.
- 화롄 향편식의 홍유초수: 매콤한 풍미가 밤의 정적을 깨우는 맛
- 동대문 야시장 원주민 거리의 석판구이 돼지고기: 든든한 포만감을 주는 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