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첫 내기는 '누가 먼저 길을 잃는가'였다. 결과는 처참하게도 셋 다 패배. Li Xiang Jiu Dian 앞의 거대한 시계탑을 이정표 삼았건만, 정작 도착한 건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뒤였다. 눅눅한 공기가 끈적하게 피부에 달라붙어 불쾌했지만, 서로의 멍청한 표정을 보니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동대문 야시장의 원주민 거리, 숯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멧돼지 고기 냄새가 코끝을 강렬하게 찔렀다. 조심스레 들이킨 수수맥주는 흙내음이 섞인 따뜻한 비밀 같았다. 혀끝에 남은 짭조름한 풍미와 시장의 소란스러운 소음이 어우러져 비로소 여행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실감했다.
"너 다이어트 한다며." 내 핀잔에 친구는 손에 든 세 가지 종류의 간식을 멍하니 바라봤다. 우리는 서로의 지독한 모순을 비웃으며 더 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하는 건 이 집단의 오래된, 그리고 가장 치열한 전통이니까.
Li Xiang Jiu Dian의 현대적인 객실 중 하나인 '튈르리' 룸. 프랑스 귀족이라도 된 양 우아하게 굴어보자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실상은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널브러져 버블아이스를 나눠 먹는 게 전부였다. 세련된 인테리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 괴리감이 우리를 더 즐겁게 했다.
새벽 6시의 욕실,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이 보였다. 누군가 거대한 푸른 실크 천을 무심하게 펼쳐놓은 듯한 바다였다. 몽글몽글한 거품과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팽팽했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도시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 오직 물소리만 들리는 정적이 좋았다.
거위털 침구의 감촉은 마치 거대한 구름 속에 파묻힌 기분이었다. 방 안에는 우리의 낮은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고, 암막 커튼 사이로 가늘게 스며든 햇살이 바닥의 나뭇결을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포근한 온기 속에서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게으름을 피웠다.
5월의 비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철도문화원구로 향하던 길에 우리는 완전히 젖어버렸다. 젖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오래된 철분 냄새와 비릿한 빗물이 섞여 났다. 옷은 물을 머금어 무거워졌지만, 오히려 빗속을 걷는 마음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화롄의 공기에는 야생 생강꽃의 달콤한 향과 바다의 짠기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 여행의 거창한 의미나 깨달음 같은 건 찾지 않았다. 그저 함께 있는 이들의 숨소리가 편안했고, 돌아갈 곳이 포근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눅눅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있던 우리.
- 동대문 야시장 원주민 거리의 멧돼지 구이는 꼭 먹어봐.
- Li Xiang Jiu Dian의 태평양 뷰 욕조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