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을 예약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당신에게, 혹은 어느 나른한 오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당신에게 이 글을 씁니다. 낯선 도시의 공기가 그리워질 때, 우리가 머물렀던 그곳의 온기와 색깔을 기억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옅은 베이지색 공기와 15분의 느린 산책
Hua Lian Jia Qi Fan Dian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낮은 채도의 대지색입니다. 7평 남짓한 공간을 채운 베이지색 벽지와 은은한 조명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은 채 우리를 포근하게 품어주는 따뜻한 침묵의 담요 같았습니다. 바스락거리는 하얀 시트의 서늘한 촉감이 피부에 닿을 때, 비로소 화롄의 품에 안겼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3월의 공기는 적당히 미지근해 얇은 가디건 하나만 걸치고 걷기에 충분했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흙 내음과 옅은 소금기가 섞인 바람이 뺨을 스칠 때마다 마음속의 긴장이 조금씩 풀려나갔습니다.
호텔을 나서 오른쪽으로 3분이면 소박한 식당들이 나타나고, 왼쪽으로 2분이면 편의점이 보입니다. 동대문 야시장까지 걷는 15분 동안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과 회색빛 도로 위로 쏟아지는 정오의 꿀빛 햇살을 눈에 담았습니다. "저 꽃 이름이 뭘까?" 당신이 나지막이 물었을 때, 대답 대신 나는 당신의 손을 조금 더 꽉 쥐었습니다. 바다 밑바닥에 커다란 전등을 켜둔 것 같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말 없는 감탄사만으로도 충분히 충만했습니다. 그 바다는 마치 누군가 하늘의 조각을 떼어 물속에 녹여낸 것처럼 투명하고 찬란했습니다. 우리는 그 색채 속에 한참을 머물며, 서로의 보폭이 조금씩 닮아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우리만의 정적
5층 세탁실에서 보낸 시간들이 기억납니다. 웅웅거리는 기계음과 갓 세탁된 옷가지에서 풍기는 포근한 세제 냄새. 빙글빙글 돌아가는 빨래를 멍하니 바라보던 당신의 옆모습을 보며, 내 마음속 소음들도 함께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곳은 일상의 소란함이 사라진, 오직 우리만의 작은 성소 같았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보폭을 맞추는 법을 여전히 배우는 중이었지만, 그 정적만큼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이면 B1 조식당에서 갓 구운 빵 냄새와 사람들의 낮은 웅성거림, 그리고 달그락거리는 접시 소리가 어우러져 기분 좋은 소란함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꿀처럼 달콤한 챔피언 고구마 한 입에 당신이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라고 속삭였을 때, 그 어떤 풍경보다 달콤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Hua Lian Jia Qi Fan Dian의 다다미방에서 느꼈던 그 안온함은 마치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3월 20일이 지나면 마타안 습지에 반딧불이가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어둠 속에서 작은 점들이 반짝이는 풍경을 상상하며, 우리는 거창한 약속 대신 지금 이 온도와 습도,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당신이라는 존재에 감사했습니다. 무용한 것들이 주는 가장 순수한 즐거움을 우리는 그렇게 화롄의 봄 속에서 조금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화롄의 어느 오후, 옅은 베이지색 침구 위에서.
- 동대문 야시장까지 아무 목적 없이 천천히 걷기.
- 3월 말, 마타안 습지의 반딧불이를 찾아 조용히 숨죽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