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바람이 목도리를 잡아당기던 시간
차 문을 열자마자 태평양의 짙은 소금기가 섞인 바람이 훅 끼쳐왔다. 1월의 화롄은 생각보다 서늘했고, 우리는 서로의 목도리가 풀리지 않았는지 다정하게 매만지며 느릿하게 걸었다. 언덕 위로 굽이진 길을 따라 올라가니 붉은 지붕의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만의 낯선 풍경 속에 툭 떨어진 유럽풍의 건축물. 그 이질적인 조화가 오히려 여행의 설렘을 자극했다. Hua Lian Yuan Xiong Yue Lai Da Fan Dian의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높은 천장과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이 뿜어내는 웅장함이 우리를 맞이했다. 밖의 서늘함을 단숨에 지워버리는 온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 비로소 안도감이 밀려왔다.
객실은 고풍스러운 빅토리아풍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무거운 벨벳 커튼을 걷어내자, 창밖으로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짙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누군가는 이 압도적인 광경에 감탄하겠지만, 나는 그저 바다가 참 넓다는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두툼한 카펫 위에 나란히 누웠다. 발등을 포근하게 덮는 카펫의 촉감과 그 위로 쏟아지는 미지근한 오후의 햇살이 나른했다. "그냥 여기 계속 있을까?" 네가 나직이 물었다. "그럴지도." 나는 짧게 답하며 너의 손등을 만졌다. 특별한 계획은 필요 없었다. 짐을 풀고, 다시 눕고, 수평선을 바라보는 무용한 반복. 그 정적 속에서 서로의 호흡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마치 잔잔한 파도처럼 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메웠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건, 삶에서 꽤 괜찮은 성취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7시, 물안개가 산등성이를 덮을 때
새벽의 공기는 한층 더 날카로웠다. 우리는 보들보들한 가운을 걸치고 실내 스파 풀로 향했다. 따뜻한 물속으로 몸을 천천히 밀어 넣었을 때, 피부를 감싸는 온도가 완벽했다. 찰랑이는 물결이 어깨를 스치고, 수면 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세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웠다. 밖은 여전히 시린 겨울이겠지만, 이곳의 물은 우리를 포근한 요람처럼 감싸 안았다. 우리는 물속에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창한 미래나 약속 같은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어제 먹은 저녁의 맛이나 내일 아침에 마실 차의 종류 같은 사소한 조각들. 그런 무의미한 대화들이 오히려 우리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고 있었다.
조식 뷔페에서 만난 로스트 덕은 이번 여행의 가장 선명한 미각적 기억이다. 얇고 바삭한 껍질을 깨물면 고소한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고, 짭조름한 풍미가 혀끝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입안을 정돈하고 발코니로 나갔다. 1월의 화롄, 기온은 18도 남짓. 산등성이에 걸린 옅은 안개가 천천히 걷히며 태평양의 파도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Hua Lian Yuan Xiong Yue Lai Da Fan Dian의 테라스에서 우리는 나란히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는 이 여행에서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저 로스트 덕이 맛있었다는 생각과 지금의 온도가 적당하다는 만족감뿐이었다. 더 많은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보폭을 조금씩 맞춰가며 겨울의 한가운데를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붉은 지붕 아래, 우리는 아주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