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소란과 태평양의 서늘한 숨결
11월의 화롄 역은 태평양의 짭조름한 내음과 서늘한 공기가 기분 좋게 뒤섞여 있었다. 셔츠 깃을 가볍게 스치는 바람의 온도는 정확히 22도쯤 되었을까.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유치한 내기를 하나 시작했다. 누가 가장 먼저 길을 잃을 것인가. 지도 앱을 든 친구는 세상 모든 경로를 꿰뚫고 있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앞장섰지만, 정작 첫 번째 갈림길에서 멈춰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 멍한 표정을 포착한 누군가는 한심하다며 투덜거렸고, 또 다른 이는 그 찰나의 당혹감이 웃겨서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느긋하게 우리 편이었으니까. 보도블록 위를 구르는 캐리어의 불규칙한 덜컹거림이 마치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타악기 소리처럼 들렸다. 11월의 공기는 날카롭지 않고 뭉툭해서, 가벼운 외투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계절이었다. 플랫폼에 남겨진 기차의 잔향과 우리의 시끄러운 대화가 겹쳐지는 그 불균형한 조화가 꽤 근사하게 느껴지는 출발이었다.
잘못 든 길 끝에서 마주한 무용한 다정함
F hotel Hua Lian Zhan Qian Guan으로 향하는 길은 사실 매우 짧다. 하지만 우리는 일부러 그 효율적인 경로를 거부하기로 했다. 궈롄 1로를 따라 걷다가 궈민 8가로 꺾어 들어가는 그 짧은 여정 속에서, 우리는 이름 모를 작은 구멍가게와 햇볕을 쬐며 낮잠을 자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해도 될까?"라고 묻는 친구의 걱정 섞인 목소리에 나는 "이게 바로 여행의 본질이지"라고 답했다. 사실 본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걷다 보니 마주친 풍경이 좋았을 뿐이다. 잘못 든 길 끝에서 마주한 낡은 담벼락의 바랜 분홍색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고, 윙윙거리며 지나가는 스쿠터들의 소음조차 이곳의 일상적인 음악처럼 들렸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알싸한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간질일 때쯤, 우리는 서로의 짐 가방 바퀴 하나가 덜덜거린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것을 이번 여행의 '행운의 소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11월의 햇살은 피부에 닿는 온도가 적당해 굳이 빨리 걷지 않아도 땀이 나지 않았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발걸음을 늦추고 싶어지는 이상한 심리. 우리는 그렇게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 동안 돌아서 갔다. 그 20분의 낭비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얀 안식과 매끄러운 물의 위로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것은 정갈하고 차분한 공기였다. F hotel Hua Lian Zhan Qian Guan의 객실 문을 열었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눈부시게 하얀 침대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몸의 곡선을 그대로 받아냈고, 바스락거리는 시트의 서늘하고 깨끗한 감촉이 피부에 닿았다. "여기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어도 이번 여행은 성공이다"라는 말에 모두가 깊은 한숨 섞인 동의를 보냈다. 소박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객실의 분위기는 여행자의 긴장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했다.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자, 이곳의 소프트 워터 시스템 덕분인지 피부에 닿는 물의 감촉이 비단 한 겹을 얇게 바른 것처럼 매끄러웠다. 평소 쓰던 물과는 다른, 미끄러지듯 피부를 감싸는 느낌이 지친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씻고 나와 보니 오후 2시 반. 로비에서 제공하는 무료 오후 티타임의 작은 쿠키와 커피 한 잔을 챙겨 방으로 돌아왔다. 바삭한 쿠키 한 조각을 씹으며 창밖의 화롄 시내를 바라봤다. 저녁에는 근처 중산로로 나가 '샹볌스'의 매콤한 홍유초수를 먹기로 했다. 붉은 기름의 향긋한 냄새와 쫄깃한 만두피의 조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거창한 계획은 없었지만, 깨끗한 시트의 감촉과 적당한 온도의 물, 그리고 함께 있는 친구들의 나른한 숨소리만으로 방 안은 이미 충분히 가득 찼다. 누워있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었다면, 우리는 이미 완벽한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창밖으로 11월의 낮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 중산로의 '화롄 샹볌스'에서 매콤한 홍유초수를 꼭 맛보세요.
- 시간이 된다면 중횡공로의 붉은 단풍길을 따라 가을의 끝자락을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