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위에 맺힌 투명한 쉼표
물방울. 화롄 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5월의 눅눅한 공기가 피부를 무겁게 감싸 안았다. 짐가방의 바퀴가 보도블록의 틈새를 지날 때마다 덜컹거리는 규칙적인 소음이 귓가를 때렸고, 국련 1로를 지나 국민 8가로 꺾어 들어가는 길목에는 이름 모를 풀꽃들의 비릿하면서도 싱그러운 향기가 섞여 있었다. 중화초등학교를 지나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26도의 온도는 적당히 미지근했고, 습도는 마치 보이지 않는 얇은 막처럼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들어선 야즈 더블룸의 공기는 바깥보다 서늘했다. 짐을 풀기도 전에 가장 먼저 이끌린 곳은 욕실이었다.
거울 위에 맺힌 물방울들이 동그랗고 투명하게 뭉쳐 있었다. 이곳의 연수 시스템 덕분인지, 손가락 끝으로 그 물기를 천천히 훑어내자 비단 한 겹을 바른 것처럼 매끄럽게 밀려 나갔다. 일반적인 수돗물에서 느껴지는 뻣뻣한 마찰력이 전혀 없었다. 손끝에 남은 이 낯설고도 부드러운 감촉은 긴장했던 마음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켰다. 욕실의 은은한 온기와 5월의 눅눅한 공기가 교차하며 만들어낸 묘한 냄새가 났다. 인위적인 비누 향은 아니었지만, 잘 정돈된 공간 특유의 무색무취한 청결함이 코끝을 스쳤다. 나는 한동안 그 매끄러운 물방울의 궤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런 쓸모 없는 관찰이었지만, 그 무용한 시간이 주는 평온함이 무엇보다 절실했던 순간이었다.
미끈거리는 감촉에 대하여
"여기 물, 좀 이상하지 않아?"
그녀가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물었다.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하얀 쇄골 근처에 작은 물방울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뭐가?"
"그냥, 피부가 너무 매끄러워서. 비누를 쓰지 않았는데도 계속 미끈거리는 기분이야."
나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에 맺힌 물방울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손끝에 닿는 피부의 감촉이 평소보다 훨씬 부드럽게 느껴졌다.
"나쁘지 않네. 그냥 좋다고 하자."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거울 속의 서로를 응시했다. 오후 2시의 나른한 햇살이 커튼 틈새로 스며들어 방 안의 먼지 입자들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침대에 몸을 던졌다. 60%의 힘만 쓰고 나머지는 비축하자는 나의 여행 철학에 그녀가 온전히 동조한 순간이었다.
무용한 매끄러움이 가르쳐준 것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화롄 역으로 향하는 길, 거리에는 백합꽃 향기와 옅은 바다 냄새가 섞여 있었다. F hotel Hua Lian Zhan Qian Guan에서 머무는 동안 우리가 경험한 것은 사실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제공되었던 기대 이상으로 풍성한 조식의 온기와, 욕실에서 느꼈던 그 기묘하게 매끄러운 물의 촉감은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각인되었다.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 소중한 무용한 감각들. 우리는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었다. 억지로 힘내어 걷거나 무언가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물기가 미끄러웠다는 사소한 기억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다시 돌아가면 다시 뻣뻣하고 거친 일상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손끝에 남았던 그 부드러운 감촉을 떠올리면 조금은 더 유연하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화롄의 하늘이 적당히 흐릿했다.
- 화롄 역에서 호텔까지 10분간 천천히 걸으며 도시의 소음을 관찰해 보세요.
-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호텔의 풍성한 조식으로 든든한 하루를 계획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