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조금 더 걷다가 갈까"
"정말 지금 가야 해?"
그가 걸음을 멈췄다. 나는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쥔 채 그를 바라봤다. 4월의 화롄은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섞인 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시리도록 파랬다. "기차는 이미 도착했어. 지금 안 가면 한참 기다려야 해." 우리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은 채 Jing Dian Jia Ri Fan Dian으로 향했다.
서늘한 대리석 위에 내려앉은 오후의 정적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대리석의 서늘한 감각이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Jing Dian Jia Ri Fan Dian의 공간은 화려함보다는 내밀한 정적이 흐르는 곳이었다. 은은하게 감도는 깨끗한 리넨 향기가 코끝을 스쳤고, 체크인을 마치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의 짧은 침묵은 설렘과 긴장 사이의 묘한 떨림을 공유하게 했다. 객실의 문을 열자 빳빳하게 다려진 흰 시트가 우리를 맞이했고, 그 위에 몸을 던졌을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저항감은 일상의 팽팽했던 긴장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특히 대리석 욕실의 매끄러운 촉감과 뜨거운 물줄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 어깨에 켜켜이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며 몸과 마음이 말랑하게 풀려났다.
다음 날 아침, 아치형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4월의 햇살이 식탁 위 커피잔의 가장자리를 하얗게 태우고 있었다. 갓 구운 빵의 바삭한 소리가 고요한 식당 안에 리듬감 있게 울려 퍼졌고,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풍미와 쌉싸름한 커피의 향은 잠들어 있던 감각을 부드럽게 깨웠다. 우리는 호텔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고 리유호로 향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고, 호수 위에 뜬 작은 배들이 느릿하게 유영하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파란 하늘과 더 파란 호수가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우리는 "저기 봐, 물고기가 있어" 같은 사소하고 무용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무의미한 말들이 오히려 우리 사이의 빈틈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다시 돌아온 방에서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누워 있었다. 천장의 무늬를 세거나 서로의 고른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독히도 무용한 시간. 하지만 그 무용함이야말로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갈구했던 사치였다. 억지로 무언가가 되어야 할 필요도, 특별한 계획을 수행해야 할 의무도 없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존재 자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대리석의 차가움과 햇살의 온기, 그 극명한 대비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의 호흡에 조금씩 익숙해졌고, 우리의 관계는 조금 더 유연하고 깊게 물들어갔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파란 하늘을 보며, 우리는 다음에도 그냥 오자고 약속했다.
- 아침 식사 때 아치형 창가 자리에 앉아 쏟아지는 햇살을 가만히 구경해봐.
- 호텔 자전거를 타고 리유호의 잔잔한 물결을 따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