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는 순간, 이디에 모텔의 공기는 묵직한 금색 커튼의 무게감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발목까지 푹신하게 잠기는 두꺼운 카펫의 촉감은 마치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마법 양단 같았고, 천장의 화려한 조명은 공간 전체를 은은한 호박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중동의 화려함과 유럽의 고전미, 그리고 동양의 정적인 선이 뒤섞인 인테리어는 어른의 눈엔 다소 과한 욕심처럼 보였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완벽한 환상의 세계였다. "우와, 진짜 궁전에 온 것 같아!" 첫째의 외침과 함께 침대 위로 몸을 던지는 둔탁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금색 장식물을 조심스레 만지며 스스로를 왕자라 믿는 둘째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이런 엉뚱한 상상력이 아니었을까. 이곳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일상의 질서를 잠시 내려놓고 마음껏 역할 놀이에 빠져들 수 있는 거대한 놀이터였다. 12월의 건조한 바람을 막아주는 포근한 실내 온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소란함을 기꺼이 껴안으며 가족이라는 이름의 느슨한 유대감을 확인했다. 무용한 장식들이 주는 의외의 즐거움이 우리 사이의 긴장을 부드럽게 녹여내고 있었다.
거품 소용돌이 속에서 아이가 발견한 작은 우주는 무엇이었을까
단연코 SPA 욕조였다. 버튼 하나에 거대한 물줄기가 포효하며 하얀 거품의 성을 쌓아 올리자, 둘째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반짝였다. 뜨끈한 물이 피부에 닿는 매끄러운 감촉과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샴푸 향이 욕실의 습한 공기와 섞여 몽글몽글한 안도감을 만들어냈다. 아이는 가져온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마사지 제트 분사구 위에 올리고는 "여기 진짜 최첨단 세차장이야!"라며 낄낄거렸다. 거품이 튀어 뺨에 닿을 때마다 아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고, 그 소리는 욕실의 타일 벽을 타고 경쾌하게 공명했다. 거울에 뿌옇게 서린 김 위로 손가락을 이용해 작은 원을 그려 바깥을 보았지만, 정작 내 시선이 머문 곳은 거품 속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숨겼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물결의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질 때마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더 맑게 울려 퍼졌고, 그 단순한 유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의 흐름이 느릿한 강물처럼 유연해졌다. 따뜻한 물속에서 몸이 노곤해질 때쯤, 아이들은 어느새 조용해졌다. 억지로 잠들라고 재촉하지 않아도, 온천수의 온기가 아이들의 눈꺼풀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나는 포근한 향기와 욕실의 눅눅한 온기가 섞여 묘한 평온함을 주었다. 거창한 액티비티는 없었지만, 욕조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위대한 탐험을 마친 듯 보였다.
체크아웃 후, 마음속에 끝까지 남을 잔상은 무엇일까
이디에 모텔을 나서며 맛본 60년 전통의 파파야 우유, 그 진하고 걸쭉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의 달콤쌉싸름한 여운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혀끝에 닿는 묵직한 질감과 파파야 특유의 이국적인 향이 겨울의 서늘한 공기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어 방문한 바구아 산의 월영 등불 축제는 12월의 차분한 밤공기를 타고 흐르는 빛의 향연이었다. 짙은 남색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등불들이 아이들의 눈동자에 작은 별처럼 박혔고, 그 빛을 따라 걷는 길 위에서 아이들은 평소보다 훨씬 순한 양이 되어 내 손을 꼭 잡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창화의 적당한 온도, 그리고 서로의 옷깃을 여며주며 느꼈던 체온. 대단한 깨달음이나 극적인 감동은 없었지만, 그냥 모든 것이 적당해서 좋았다. 아이들의 작은 손에서 전해지던 온기와, 밤공기의 서늘함이 교차하던 그 거리감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삶이 꼭 특별한 사건으로 채워질 필요는 없다. 이렇게 적당히 낯설고 적당히 따뜻한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하나의 여행이 된다.
아이들이 잠든 차창 너머로 창화의 밤거리가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었다.
- 바구아 산 대불 풍경구의 등불 축제는 밤 10시까지 이어지니 여유롭게 산책하시길 권합니다.
- 현지 파파야 우유는 신선할 때 마셔야 특유의 쌉싸름한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