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믿지 말았어야 했다. 눅눅한 오후의 열기가 좁은 골목길에 갇혀 숨을 턱턱 막았다. 내비게이션은 분명 여기라고 외쳤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이끼 낀 낡은 담벼락뿐이었다. 그러다 마주친 터키석 빛깔의 파란 조각 목문. H1967의 그 문을 여는 순간, 도시의 소음이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듯 툭 끊겼다.
불이방에서 갓 사 온 에그타르트가 손끝에 닿을 정도로 따뜻했다. 한 입 베어 물자 고소한 버터 향과 함께 붉은 팥소와 노란 달걀노른자가 부드럽게 섞였다. 과하지 않은 단맛 뒤로 짭조름한 노른자의 풍미가 혀끝에 맴돌았다. 우리는 말없이, 오직 씹는 소리만 공유하며 그 달콤함을 나눠 가졌다.
"완전 우리 할머니 집 같아." 친구 하나가 거실 구석에서 지직거리는 오래된 텔레비전을 보며 툭 내뱉었다. 나는 간판에 적힌 1967이라는 숫자를 떠올리며 짐짓 진지하게 대꾸했다. "너희 할머니는 60년대에 이런 텔레비전을 쓰셨나 보지?" 내 뼈 있는 농담에 친구는 입을 다물었고, 우리는 동시에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세면대가 낡은 재봉틀로 만들어져 있었다. 수도꼭지와 손을 씻는 곳의 간격이 묘하게 어긋나 있어, 마치 정교한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누가 더 옷소매를 안 적시고 손을 씻는지 내기를 시작했다. 결국 모두의 소매 끝이 눅눅하게 젖어버렸지만, 그 쓸데없는 승부욕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5월의 창화 공기는 눅눅한 솜사탕처럼 피부에 달라붙었다. 옥상 정원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먼 하늘 끝에서 낮은 천둥소리가 웅웅거리며 다가왔다. 습도가 주는 묵직한 압박감이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짙은 초록색 식물들이 곧 쏟아질 빗물을 기다리며 꼿꼿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맨발에 닿는 테라조 바닥의 감촉이 서늘하고 매끄러웠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편백나무가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창틀의 나뭇결은 수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아 뭉툭하고 부드러워져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마음의 소란을 잠재웠다. H1967의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기억 저장소 같았다.
예고 없이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우산은 호텔 방에 덩그러니 두고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좁은 골목길의 붉은 벽돌이 빗물을 머금어 더 짙고 선명한 핏빛으로 변해갔다. 옷이 젖어 몸이 무거워질수록, 역설적으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젖은 채로 걷는 그 낯선 해방감이 꽤 근사했다.
독립 스프링 매트리스의 탄력에 몸을 깊숙이 던졌다. 천장의 나뭇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의 모든 할 일들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완벽한 무위의 상태. 그저 누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시 이곳의 고요함 속으로 숨어들고 싶다는 갈망이 차올랐다.
파란 문을 닫고 나서는 길, 신발 끝에 묻은 작은 흙덩어리 하나.
- 불이방 에그타르트는 꼭 사서 호텔 방에서 느긋하게 먹어봐.
- 바구아산 대불 풍경구까지 차로 2분 거리니 가볍게 산책하듯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