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을 예약할지 망설이고 있는 당신에게. 혹은 어느 나른한 오후, 이름 모를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어 하는 당신에게. 거창한 계획은 잠시 접어두고, 그저 시간이 멈춘 낡은 집 한 채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싶을 때 이 편지를 읽어주길 바라요.
파란 문 너머, 시간이 고여 있는 숲
창화역에서 내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어깨가 서로 맞닿을 만큼 내밀한 길 끝에 선명한 파란색 문이 나타납니다. H1967. 1967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이 집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발끝에 닿는 것은 서늘한 테라조 바닥의 감촉입니다. 알록달록한 돌 입자들이 박힌 바닥은 3월의 눅눅하면서도 시원한 공기를 머금고 있어, 걷는 내내 발바닥을 통해 도시의 소란함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듭니다. 편백나무 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끼익' 하며 들려오는 낮은 비명은 낡았지만 단단한 신뢰처럼 느껴지며, 그 소리는 마치 집이 우리를 반기는 작은 인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방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종이와 마른 나무 향, 그리고 은은한 세월의 냄새가 섞인, 누군가의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특히 재봉틀을 개조해 만든 세면대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차가운 금속의 촉감과 어우러져 묘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화려한 대리석보다 이 투박한 쇠붙이가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곳이 가진 정직한 시간의 흔적 때문일 것입니다. '부모님 방'이라는 이름의 객실에 놓인 포근한 매트리스에 몸을 뉘어 천장의 서까래를 바라보면, "아, 이제야 정말 쉬는구나"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옵니다. 중정 정원에 고인 금빛 햇살은 마치 시간이 잠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느릿하게 흘러가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평온한 오후입니다.말하지 않아도 닿았던, 우리들의 온도
3월의 창화는 걷기에 더없이 다정한 온도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바구아산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선 '월영등제'라는 등불 축제가 한창이었는데, 밤하늘을 수놓은 오색빛 등불들이 마치 지상으로 내려온 별무리처럼 반짝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로디 말 인형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유치하고도 순수한 귀여움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지"라고 속삭이며, 억지로 무언가를 느끼려 애쓰지 않고 그저 빛나는 등불 사이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어느덧 서로의 보폭이 비슷해지는 것을 느끼며, 우리는 말보다 깊은 침묵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부이팡에서 갓 구워낸 달걀 노른자 빵을 샀습니다.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한 껍질 속에서 달콤한 팥소와 눅진한 노른자가 섞여 나왔고, 입안 가득 퍼지는 그 따스한 온기는 3월의 서늘한 공기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다시 그 좁은 길을 걸을 때, 이제는 어깨가 닿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밀착감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울타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로비 한구석에 놓인 1971년도 신문을 함께 읽으며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의 세상에 대해 속삭이던 시간. 무용한 것들이 주는 이 충만한 행복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습니다. H1967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서로의 온도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오후의 햇살이 머물다 간 어느 방의 기억으로부터.
- 부이팡의 갓 구운 달걀 노른자 빵으로 입안 가득 달콤한 온기를 채워보세요.
- 바구아산의 등불 사이를 목적지 없이 천천히 거닐며 서로의 보폭을 맞춰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