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창화는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 습도 78퍼센트. 피부에 닿는 바람은 눅눅한 수건처럼 몸에 감겼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회색빛 눈물을 쏟아낼 듯 낮게 고요해져 있었다. 푸구이 민수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쾌적하게 조율된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과 오래된 집 특유의 포근하고 은은한 나무 냄새였다. 나는 거실 한구석에 놓인 철제 흔들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삐걱거리는 금속성의 작은 소음이 정적을 깨웠다.
의자 끝에서 안방의 침대 모서리까지, 불과 몇 걸음 되지 않는 그 짧은 거리가 이번 여행의 전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가까워져야 충분한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스쳤다. 우리는 굳이 서로에게 밀착하지 않았다. 소파의 양 끝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앉아 넷플릭스 화면이 뿜어내는 푸르스름한 빛이 거실 벽면을 천천히 훑고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 그 간격이 주는 묘한 안도감이 있었다. 상대의 고른 숨소리가 들리지만 서로의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정중한 거리감. 그 거리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5월의 눅눅함이 에어컨 바람에 씻겨 내려가고, 공간 속에는 오직 우리 두 사람의 리듬만이 남았다. 그 무용한 거리감이 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침묵의 결이 겹쳐지는 순간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불이방의 달걀노른자 빵. 갓 구워낸 그것의 온기가 손가락 끝에 뭉근하게 남아 있었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바삭한 외피의 질감과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노른자의 진한 풍미.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다'는 말은 굳이 내뱉지 않았다. 그저 함께 씹고, 함께 삼켰다. 그 침묵의 동의가 어떤 화려한 문장보다 더 확실한 교감이었다.
근처에서 사 온 아삼육원의 쫄깃한 식감과 짭조름한 소스가 혀끝에 퍼질 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작게 웃었다. 이어지는 시간은 더욱 무용하고 평화로웠다. 거실의 마작 테이블 앞에 앉아 타일이 부딪히는 챙그랑 소리를 들었다. 규칙을 정확히 몰라도 상관없었다. 손끝에 닿는 타일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촉, 그리고 그것들이 섞이며 내는 불규칙한 리듬이 좋았다. 샤오미 마이크를 잡고 서툰 노래를 불렀을 때, 가사가 엉망으로 틀려도 누구 하나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박자를 맞추려 노력하며 들썩이는 서로의 어깨를 보았을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서투름을 긍정하며, 말 없는 온기를 나누었다. 굳이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각자의 섬에서 나누는 고요한 연대
때로는 같은 공간에서 완전히 다른 섬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푸구이 민수의 독립된 방들과 아늑한 다락방은 그 용도로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희미하게 확인하면서도, 완벽하게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침대의 빳빳하고 서늘한 린넨 촉감을 느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고, 상대는 창가에 기대어 밖을 보았을 것이다.
창밖으로는 결국 5월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툭, 툭,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규칙적인 메트로놈처럼 들려왔다. 정원에 핀 백합꽃들이 빗물에 젖어 무겁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각자의 방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그 고요함은 결코 외로움이 아니었다. 서로를 깊이 믿기에 가능한, 아주 안전한 고립이었다. 빗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촘촘하게 메웠고, 우리는 그 고요 속에서 각자의 속도로 휴식했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아주 조용한 평화였다. 억지로 무언가를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현관에 나란히 놓인 젖은 운동화를 보며, 우리는 다시 잠들었다.
- 불이방의 달걀노른자 빵을 사서 거실 소파에 기대어 천천히 나누어 먹기.
- 마작 테이블 앞에 앉아 타일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무용한 시간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