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와 뻔뻔함의 환상적인 조화
"야, 너 진짜 뻔뻔하다. 여기가 그 '비밀의 숲' 같은 곳이라고?"
"비밀이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 아냐. 일단 들어와 봐, 분위기 죽이지?"
"비밀이 아니라 그냥 길을 잘못 든 거겠지! 내 신발 꼴 좀 봐, 완전 늪지대 체험이라고."
"오히려 좋아. 원래 여행은 이렇게 고생해야 기억에 남는 법이야."
"그건 네가 고생시킨 사람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
우리는 젖은 옷을 털며 낄낄거렸다. 2월의 이란은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채 우리를 반겼고, 빗물에 젖은 운동화에서는 쿰쿰한 흙내음이 올라왔다. 차가운 빗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서늘함조차 웃음소리에 묻혀 어느덧 기분 좋은 자극으로 변해 있었다.
무심한 회색 벽이 주는 다정한 위로
Er Shi Lun Villa Yi Lan Guan의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은 정직한 회색의 콘크리트 벽이었다.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이라는 세련된 이름표를 달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모든 욕심을 덜어낸 무심한 공간으로 보였다. 매끄럽지 않은 벽면의 거친 질감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복잡했던 마음의 소음들이 하나둘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서늘한 무심함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가장 다정한 위로가 되었다. 방은 꽤 넓어 낮은 헛기침 소리가 잔잔한 파동처럼 벽을 타고 울려 퍼졌고, 공간을 채운 은은한 우드 향이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가장 매혹적인 것은 방 안에 떡하니 자리 잡은 작은 풀장이었다. 밖은 쌀쌀한 2월의 공기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미온수에 몸을 밀어 넣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피부를 감싸는 온기는 마치 부드러운 캐시미어 담요를 두른 듯 포근했고, 물결이 일 때마다 천장의 조명이 잘게 부서져 은하수처럼 흩어졌다. 물의 무게가 온몸을 지탱해 주는 감각은 마치 중력에서 해방된 듯한 해방감을 주었다. 창밖으로는 젖은 바위와 흙이 섞인 이란 특유의 비릿하면서도 청량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정원에서는 오리들이 무심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들의 느릿한 움직임은 우리의 조급함을 비웃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뷔페에서 마주한 산더미처럼 쌓인 신선한 샐러드의 아삭함과 갓 구운 빵의 고소한 온기는 2월의 눅눅함을 말끔히 지워주었다. 빳빳한 호텔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등에 닿을 때, 나는 비로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완전한 허락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새벽 두 시, 무용한 대화의 밀도
"결국 벚꽃은 구경도 못 했네."
"뭐, 꽃이 거기 계속 있을 텐데. 내년에 다시 오지 뭐."
"내년에 우리가 또 같이 올 수 있을까?"
"글쎄, 그때쯤이면 네가 내 신발 값 물어줬을 때쯤 오겠지."
"웃기네, 진짜."
테이블 위에는 칵테일 잔들이 흩어져 있었고, 낮의 소란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나른한 공기와 낮은 조명만이 남았다. 잔 속에 남은 얼음이 달그락거리며 내는 작은 소리가 정적을 메웠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공격하는 대신, 마음속 깊이 고요해져 있던 무용한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 놓았다. 누군가는 대학 시절 썼던 끔찍한 시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나라의 지도를 허공에 그렸다. 달콤쌉싸름한 칵테일의 향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우리는 잊고 지냈던 서로의 어린 시절과 닮은꼴의 상처들을 발견했다. 생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대화였지만, 그 어떤 유익한 강연보다 마음이 꽉 차올랐다. 억지로 무언가를 깨달으려 노력할 필요 없이, 그저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로의 못난 점을 확인하며 안심하는 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했다.
내일 아침엔 다시 비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 빗소리가 기다려진다.
- 이곳의 피자를 꼭 주문할 것. 쫄깃한 도우의 식감이 일품이다.
- 오후 6시의 무료 칵테일 타임을 누릴 것. 가장 무용하고 완벽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