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을 예약할지 말지 망설이는 당신에게. 11월의 이란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또 다정합니다. 그 고요함 속에 우리 두 사람만 남겨진다면, 꽤 괜찮은 시간이 될 것 같아 이 편지를 씁니다. 일상의 소음이 너무 커서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던 날들이 있었죠. 이제는 모든 소리를 끄고, 오직 서로의 숨소리와 숲의 속삭임에만 집중하고 싶은 그런 오후를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짙은 초록의 산세가 방 안으로 밀려들던 아침
Jiao Xi Lao Ye Jiu Dian의 객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발끝에 닿는 다다미의 까슬하면서도 포근한 촉감이 마음의 긴장을 스르르 풀어줍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보다는 바닥에 놓인 작은 탁자에 시선이 먼저 머물렀습니다. 그곳엔 짙은 갈색의 원두 한 봉지와 묵직한 수동 그라인더가 놓여 있었죠. 당신이 그라인더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기 시작하자, '드르륵, 드르륵' 하는 규칙적인 마찰음이 11월의 적막한 공기를 기분 좋게 메웠습니다. "커피 향이 정말 진하네." 당신의 낮은 목소리가 닿는 순간, 커튼을 걷자 짙은 초록색의 산세가 파도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쌀쌀한 새벽 공기가 콧등을 스치며 정신을 깨웠지만, 갓 내린 커피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마음만은 포근했습니다.우리는 유카타를 걸치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오봉기 폭포로 향하는 길은 비에 젖은 흙내음과 짙은 풀향기가 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폭포의 웅장한 물소리가 숲의 정적을 깨우며 쏟아져 내렸고, 그 소리는 마치 마음속 묵은 때까지 씻어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걷는 속도가 서로 달랐습니다. 당신은 조금 앞서갔고,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조금 느리게 걸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가 같은 보폭으로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깊은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돌아와 몸을 담근 미인탕의 물결은 비단 한 겹을 두른 듯 매끄러웠고,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온천수의 대비 속에서 몸의 근육들이 서서히 녹아내렸습니다.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서로의 얼굴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하는 그 찰나의 순간들이, 이번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평온했습니다.
접시 위에 그려진 산맥을 따라 흐르던 속삭임
저녁은 젠 가든에서 보냈습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길, 낮게 깔린 조명과 차분한 공기가 우리를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듯했습니다. 황친저우 셰프가 정성껏 준비한 오마카세 요리들이 하나둘 테이블 위에 놓였는데, 특히 펑수처 작가가 빚어낸 도자기 그릇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접시의 가장자리가 이란의 험준한 산등성이처럼 부드럽게 굴곡져 있었고, 그 안에 담긴 신선한 해산물들은 마치 작은 바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영롱하게 빛났습니다. 우리는 음식의 맛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접시 위에 그려진 보이지 않는 산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따라 그렸습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해산물의 질감은 이란의 바다가 품은 생명력을 그대로 전달해주었습니다.인증받은 소믈리에가 추천해 준 사케가 투명한 잔에 채워졌습니다. 미세하게 단맛이 도는 술이 목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거창한 미래나 무거운 약속 같은 것 말고, 오늘 본 산의 색깔이 얼마나 깊었는지, 커피 원두의 향이 얼마나 진했는지 같은 아주 사소한 조각들이었습니다. Jiao Xi Lao Ye Jiu Dian의 정적인 분위기가 우리의 대화를 더 담백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대화와 대화 사이, 짧은 침묵조차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이 공간의 온도가 같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셰프가 빚어낸 요리의 섬세한 질감과 술의 적당한 온도가 어우러져, 배가 부른 만큼 마음도 느슨하게 채워졌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순간이었지만, 그 평범함이 주는 안도감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때도 우리는 비슷한 속도로 걷고 비슷한 온도의 술을 마시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옅은 김이 서린 창가, 우리 둘만의 계절.
- 젠 가든의 오마카세는 예약제로 운영되니 미리 일정을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 외아오 해변에서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산책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