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유치함을 묵묵히 지켜본 다섯 가지 증거물들
하얀 목욕 가운: 빳빳하게 다려진 면의 서늘한 촉감이 금세 구겨진 채 바닥에 툭 던져졌다. 누가 더 푹신한 수건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벌인 유치한 쟁탈전, 그리고 8월의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채 우리들의 소란스러운 소동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자. 소매 끝에 맺힌 물방울이 서서히 말라갈 때까지 우리의 수다는 멈출 줄 몰랐다.
탄산수소염천의 물: 피부에 비단 한 겹을 얇게 펴 바른 듯 미끄러운 촉감이 일품인 미인탕의 물. 우리는 우아하게 미모를 가꾸는 대신, 서로에게 물을 튀기며 초등학생처럼 낄낄거렸다. 뜨끈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 안을 때의 안락함, 그리고 그 위로 겹쳐진 웃음소리가 하얀 김과 섞여 천장까지 몽글몽글하게 출렁였다.
23층 이스트 23의 창문: 투명한 유리 너머로 란양 평원의 백만 불짜리 야경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창에 비친 서로의 멍청한 표정을 보며 다이어트 실패담을 늘어놓았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보다 우리가 내뱉은 실없는 농담들이 더 반짝이던 밤.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맞대고 잠시 숨을 고르던 그 정적이 꽤나 다정했다.
북문 녹두사 우유 컵: 플라스틱 컵 표면에 송골송골 맺힌 차가운 물방울의 서늘함. 설탕의 진한 단맛이 혀끝에 끈적하게 남았을 때, 우리는 다음 일정을 짜는 대신 누가 더 오래 침대에 붙어있을 수 있는지 내기를 했다. 컵 바닥에 남은 녹두 알갱이를 숟가락으로 긁어내던 그 무용한 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밀도 높은 순간이었다.
방 키 카드: 손끝에 닿는 딱딱하고 매끄러운 플라스틱의 질감. 웃느라 숨이 넘어가 도어락에 카드를 제대로 대지 못해 세 번이나 '삑삑' 소리가 났던 찰나. 문 너머의 아늑한 방보다, 그 문 앞에서 꺽꺽대며 웃음을 참지 못하던 그 순간이 더 선명하다. 카드가 인식되는 짧은 기계음은 우리의 소란스러운 축제를 끝내는 종료 신호였다.
만약 이 물건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말한다면
아마 그들은 우리를 '어른의 탈을 쓴 소란스러운 침입자들'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8월의 이란은 숨이 막힐 정도로 덥고 습했다. 공기는 젖어 있었고 피부는 늘 끈적였지만, Cun Que Guo Ji Wen Quan Jiu Dian의 서늘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우리는 그 더위를 잊은 채 침대 위를 굴러다녔다. "우리 이번 여행에선 딱 60퍼센트의 힘만 쓰자"라고 약속했지만, 정작 서로를 놀리거나 헛소리를 할 때만큼은 120퍼센트의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나노 밀크 배스의 부드러운 거품이 피부를 감싸고, 보석 목욕 소금의 짭조름한 내음이 공기 중에 흩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굴어도 괜찮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눅눅한 공기마저 우리를 더 가깝게 밀착시켰던 여름날.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무런 성취도 하지 못했지만, 그 무용한 시간이 우리를 구원했다.
체크아웃하는 길, 로비의 낮은 조명이 우리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 23층 이스트 23의 가이세키 요리는 꼭 경험해 보길. 이베리코 돼지의 부드러움이 일품이다.
- 북문 녹두사 우유 한 잔을 들고 정처 없이 걷는 느린 산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