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공기와 엇갈린 이정표
루동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3월 이란의 눅눅한 공기가 젖은 수건처럼 피부에 무겁게 달라붙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에서는 비릿한 흙 내음과 이름 모를 풀꽃의 향기가 섞여 났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벼운 내기를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먼저 길을 잃거나 물건을 분실하는 사람이 저녁 식사 후의 모든 잔심부름을 도맡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허망할 정도로 뻔했다. 자신만만하게 지도를 펼쳐 들고 앞장섰던 친구가 정확히 5분 만에 정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당혹스러운 뒷모습을 보며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보도블록의 틈새에 걸릴 때마다 덜컥거리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규칙적인 박자를 만들어냈고, 그 소음은 오히려 불안한 여정 속에 묘한 안정감을 더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눅눅한 날씨에 대해 투덜거렸고, 누군가는 그 불평을 배경음악 삼아 잿빛으로 물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번 여행의 유일하고도 완벽한 계획인 것처럼 우리는 느릿하게, 하지만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하얀 소금이 내려앉은 숲의 정적
원산의 산길을 오르는 길은 마치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 같았다. 3월의 이란은 온통 하얀색의 향연이었다. 만개한 동화꽃들이 나무마다 촘촘하게 박혀 있어, 멀리서 보면 누군가 산 전체에 고운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바람이 결을 따라 불어올 때마다 하얀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려 우리의 어깨와 머리칼 위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우리는 그 꽃잎들을 털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마치 이 숲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무언의 약속처럼. 걷는 내내 특별한 대화는 없었지만, 발밑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흙의 질감과 코끝을 스치는 서늘한 숲의 공기가 빈자리를 채웠다. 어느 지점에서 잠시 멈춰 섰을 때, 친구 하나가 운동화 끈이 풀렸다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발 끝에 묻은 짙은 갈색의 젖은 흙이 하얀 꽃잎과 대비되어 선명하게 보였다. 서두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흐르는 시간은 느릿했고, 공기는 적당히 서늘해 정신을 맑게 깨웠다. 거창한 깨달음을 얻으려 온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꽃이 지독하게 하얗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충분히 충만해졌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숲이 주는 고요한 위로를 등에 업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물의 온기가 빚어낸 완벽한 침묵
마침내 도착한 Cun Que Guo Ji Wen Quan Jiu Dian의 로비에 들어서자, 바깥의 습한 소란함은 사라지고 정돈된 서늘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1층 로비의 정교한 물고기 연못에서 유영하는 생명들을 잠시 바라본 뒤, 우리는 행정 스위트룸의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구름처럼 푹신해 보이는 하얀 침구였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적당한 탄성을 가진 매트리스가 몸의 곡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그 순간 여행의 피로가 물리적인 무게가 되어 바닥으로 깊게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방 안에는 두 개의 뜨거운 탕이 마련되어 있었다. 탄산수소염천의 물에 몸을 담그자, 생경하면서도 아늑한 촉감이 전신을 감쌌다. 그것은 단순히 뜨거운 물이 아니라, 피부 위에 얇은 비단 한 겹을 매끄럽게 펴 바른 것 같은 밀도 높은 부드러움이었다. 손가락 끝을 타고 흐르는 물의 무게감이 묵직하게 느껴졌고, 눈을 감자 세상의 모든 소음이 물속으로 잠겨 둔탁하게 변했다. 오직 나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간헐적으로 들리는 물 튀기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저녁은 23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정갈한 카이세키 요리를 즐겼다. 제철 식재료의 본연의 맛이 과하지 않게, 하지만 정확하게 혀끝에 닿았다. 창밖으로 펼쳐진 19층 높이의 탁 트인 전망은 루동의 야경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시며 낮에 길을 잃었던 소동과 산길에서 만난 하얀 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장된 감탄사는 없었지만, '좋았다'거나 '나쁘지 않았다'는 담백한 말들이 식탁 위를 천천히 굴러다녔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빳빳하고 포근한 호텔 가운을 걸치고 누웠을 때, 은은한 조명이 방 안을 고요하게 덮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상태. 그저 누워 있는 것 자체가 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밤이었다.
내일은 조금 더 늦게, 물의 온기 속에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다.
- Cun Que Guo Ji Wen Quan Jiu Dian의 19층 전망과 함께 즐기는 카이세키 코스를 추천한다.
- 원산의 동화꽃 길을 걸을 때는 젖은 흙길에 강한 편한 운동화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