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안쪽의 풍경이 보일 것만 같아 조심스레 손을 뻗었지만, 손끝에 닿은 건 매끄럽고 차가운 페인트칠뿐이었다. Lv Ren Yi Zhan의 3D 벽화는 생각보다 정교했고, 내 멍청한 표정을 지켜보던 친구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복도에 낮게 울려 퍼졌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해변가에서 갓 구워낸 황기 파전을 샀다. 코끝을 찌르는 고소하고 진한 기름 냄새에 침이 고였다. 한 입 베어 물자 짭조름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고, 6월의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끈적한 바람은 뜨거운 파전의 열기와 묘하게 어우러졌다. 우리는 말없이 바다의 푸른 빛을 응시하며 천천히 씹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먼저 지치는 사람이 편의점 쏘기다." 우리가 건 멍청한 내기였다. 결과는 뻔했다. 습도 79%의 타이둥 공기는 피부에 쩍쩍 달라붙었고, 우리는 단 10분 만에 땀범벅이 되어 헐떡였다. 결국 셋 다 항복을 선언했고, 편의점에서 차가운 망고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꼴을 비웃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은 일종의 지루한 복권 같았다. 8층까지 올라가는 단 한 대의 엘리베이터.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는 한참을 서성여야 했다. "이 정도면 그냥 계단으로 가는 게 빠르겠다"고 투덜거렸지만, 막상 문이 열리고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폭포처럼 쏟아지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동랑 가니발의 소란스러운 소음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던 밤이었다. Lv Ren Yi Zhan의 하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바스락거리는 시트의 서늘한 촉감이 피부에 닿자, 낮 동안의 소동이 거짓말처럼 멀어졌다. 방 안에는 오직 낮은 숨소리와 은은한 세제 향기만 남았다. 충분한 고요였다.
아침 식사 공간은 생각보다 넓고 쾌적했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현지 음식들이 정갈하게 줄지어 있었다. 심플한 인테리어 속에 놓인 계란 요리와 신선한 과일들. 평소엔 아침을 거르던 친구가 여기서는 접시를 두 번이나 비웠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타이둥의 아침 햇살이 적당히 눈부셨다.
오후 3시, 예고 없이 굵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산도 없이 젖은 채로 호텔 로비에 뛰어 들어오자, 직원이 말없이 두툼하고 보송한 수건을 건넸다. 젖은 머리를 털어내며 마주 본 서로의 엉망진창인 몰골. 옷은 다 젖었지만, 이상하게 마음만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철화마을까지 걷는 길은 짧았다. 10분 정도 걷자 거리의 활기와 알록달록한 소품들의 색감이 시야를 채웠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예쁜 것들을 구경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누웠다. 무용한 시간들이었지만, 그래서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눅눅한 공기 속에 섞여 있던 달콤한 망고 향기가 아직 손끝에 머물러 있다.
- Lv Ren Yi Zhan의 3D 벽화 앞에서 엉뚱한 각도로 인생 사진 남겨보기
- 해변 공원에서 황기 파전 하나 들고 멍하니 바다 바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