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른한 오후, 이 방을 예약할지 말지 망설이는 당신에게.
여행은 거창한 목적지를 찾는 일이 아니라, 그냥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몸을 옮기는 일이다.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낯선 도시의 공기를 마시고, 익숙하지 않은 천장을 바라보며, 내 몸에 맞는 적당한 침대를 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창가에 걸린 4월의 파란색
타이둥의 봄은 온통 파란색이었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까지 모두 같은 톤의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Nan Feng Tie Hua Zhan의 로비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적당히 미지근한 공기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약간 닳아 있었다. 누군가 수없이 눌렀을 그 버튼을 나도 눌렀다.
방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들어온 것은 환한 빛이었다. 객실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아이 셋이 누워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서로를 보며 작게 웃었다. 우리 둘에게는 지나치게 넉넉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여백이 오히려 편안했다. 하얀 벽면은 오후의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들의 캔버스가 되었다. 린넨 시트의 바스락거리는 촉감이 피부에 닿았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창밖으로는 4월의 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 바람은 바다의 짠 내음을 조금 싣고 왔다. 23도의 기온, 약간은 끈적이는 78%의 습도가 피부에 닿았지만,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것을 적당히 씻어내 주었다.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누워 있는 것, 그것이 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도시의 소음은 창문 너머로 멀어졌고, 방 안에는 오직 우리의 숨소리만 남았다. 나쁘지 않은 정적이었다.
욕조 속에 잠긴 낮은 대화들
방 안의 욕조는 꽤 컸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욕실을 가득 채웠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부 위에 얇은 비단 한 겹을 바른 것처럼 매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욕실과 침실의 경계가 모호한 구조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그 개방감이 우리 사이의 거리마저 좁혀주는 것 같았다. 숨길 것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치샹에서 먹었던 두부 이야기를 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했던, 짭조름하면서도 끝맛은 달았던 그 묘한 맛에 대해.
대단한 철학이나 미래에 대한 거창한 약속 같은 건 없었다. "물 온도가 딱 좋아"라는 말, 그리고 "응, 그러네"라는 짧은 대답.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다음 날 아침, 1층 식당에서 먹은 조식은 평범했지만 신선했다. 7시부터 10시 반까지라는 넉넉한 시간 덕분에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커피의 온기를 즐겼다.
2층의 세탁기 앞에 서서 30타이완달러를 넣으며, 우리는 이 무용한 시간들이 사실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탁기 속에서 옷가지들이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명상적이었다. 헬스장의 기구들을 구경하며 우리는 내일은 더 많이 걷자고, 하지만 오늘은 더 많이 누워 있자고 속삭였다. 서로의 보폭을 맞추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생각보다 느렸지만, 그 느림이 우리를 안심시켰다. 다시 이곳에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시트 위에 길게 늘어진 오후의 햇살.
- 치샹의 두부 요리와 함께 아주 느린 아침을 보낼 것.
- Nan Feng Tie Hua Zhan의 넓은 욕조에서 충분히 멍하니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