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9월 타이베이가 이렇게 끈적거릴 줄 알았냐?"
"내 피부가 지금 거대한 늪지대가 된 기분이야. 누가 오자고 했더라? 기억 안 나?"
"내가 했지! 근데 He Yuan San Jing Hua Yuan Fan Dian 바로 앞이 지하철역이라니까? 동선만큼은 완벽하잖아."
"말은 잘해. 내 운동화 꼴 좀 봐, 이미 빗물을 잔뜩 머금어서 걷는 게 아니라 질질 끌고 다니는 수준이라고."
"그냥 젖은 채로 다녀. 그게 여행의 낭만이지, 이 멍청아!"
서로의 탓을 하며 낄낄거리는 소리가 로비의 서늘한 에어컨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눅눅한 공기를 뚫고 들어온 순간 느껴진 쾌적한 냉기와 은은한 방향제 향기가 우리를 반겼다. 거창한 계획 따위는 없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지치면 쓰러지듯 눕기로 한 것, 그것이 우리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약속이었다.
소란한 도시를 잠재우는 정갈한 섬
He Yuan San Jing Hua Yuan Fan Dian의 객실은 도시의 소란을 잠재우는 정갈한 섬 같았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완전히 펼쳐놓아도 발 디딜 틈이 넉넉한 공간감 덕분에, 좁은 골목을 헤매며 조여왔던 마음의 긴장이 비로소 느슨하게 풀렸다. 바스락거리는 고밀도 흰 시트 위로 몸을 던지자,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옷가지들이 시트 속으로 깊게 고요해지으며 묘한 해방감을 선사했다. 창밖으로는 타이베이의 네온사인이 어지럽게 명멸하며 도시의 맥박을 전하고 있었지만, 두꺼운 유리창은 그 소음들을 부드러운 필터처럼 걸러내어 방 안에는 오직 우리들의 낮은 숨소리만 고요하게 감돌았다.
2층 라운지에서 풍겨오는 쌉싸름한 커피 향이 복도의 서늘한 공기와 섞여 코끝을 간질였고, 호텔 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저녁의 허기를 자극했다. 특히 이곳의 백미인 대욕장은 미지근한 온기가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하루 종일 피부를 끈적하게 조여오던 습기를 말끔히 씻어내 주었다. 매끄러운 물의 감촉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뭉쳐있던 근육들이 스르르 풀렸고, 충효신생역 3번 출구와 맞닿은 이 완벽한 거리감이 주는 심리적 안도감은 우리를 더욱 나른하게 만들었다. 일본어에 능통한 직원들의 응대는 정교한 시계태엽처럼 정확했지만, 그들의 미소 끝에는 낯선 여행자를 보듬는 적당한 온기가 섞여 있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는 것, 그 평범하고도 쾌적한 일상이 이 공간이 주는 가장 큰 사치였다.
낮은 조명 아래 흐르는 진심의 시간
"아까 먹은 그 훠궈 말이야, 고기 맛은 가물가물한데 그 얼큰하고 진한 국물 향은 계속 생각나네."
"너무 짰어. 혀가 마비돼서 내일 아침에 맛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원래 여행은 그렇게 자극적으로 먹는 거야. 그래야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그 맛이 기억나거든."
불 꺼진 방, 노란 스탠드 조명 하나가 우리 사이의 어색한 공백을 따스하게 메우고 있었다. 낮의 소란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평소라면 쑥스러워 하지 못했을 낮고 진솔한 고백들이 공중을 천천히 유영했다.
"내일은 그냥 늦잠 자자. 화산 1914는 오후에 가도 충분하잖아."
"찬성.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게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의 무용함을 기꺼이 긍정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꼭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도, 유명한 명소를 모두 섭렵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없는 밤이었다. 오직 서로의 숨소리와 창밖의 희미한 도시 소음만이 우리가 이곳에 함께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암전된 방, 창틈으로 스며든 도시의 푸른 빛이 발끝에 고요히 머물렀다.
-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의 붉은 벽돌 골목을 느릿하게 거닐 것.
- 2층 라운지의 진한 커피 한 잔을 챙겨 아침의 도시 공기를 마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