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여기 있을까?"
"비가 너무 많이 와." 그녀가 젖은 어깨를 움츠리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러게, 근데 나쁘지 않아." 나는 대답하며 He Yuan San Jing Hua Yuan Fan Dian의 회전문을 밀고 들어갔다. 밖은 6월의 타이베이 특유의 눅눅한 공기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로비에 들어선 순간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피부에 닿아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서로의 젖은 신발 끝을 보며 짧게 웃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눅눅한 계절을 말려주는 고요한 품
충효신생역 3번 출구에서 나와 몇 걸음 걷지 않아 도착한 이곳은 도심의 소음이 적당히 섞여 들어오는 위치였지만, 객실 문을 닫는 순간 세상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빳빳하게 다려진 시트에서는 갓 세탁한 면의 깨끗한 향기가 났고, 적당히 단단한 매트리스는 지친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졸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무게감이 이 정갈한 공간 속에서는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계획 없는 여행이 주는 뜻밖의 안도감이었다.
가장 깊은 휴식을 준 것은 17층에 위치한 대욕장이었다. 6월의 비에 젖어 으슬으슬했던 몸을 뜨거운 물에 천천히 담갔다. 피부를 스치는 물결의 촉감과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마치 세상과 나를 분리하는 투명한 막처럼 느껴졌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마음의 근육들이 느슨하게 풀리고,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특별한 대화는 필요 없었다. 그저 옆에 누군가 있다는 온기, 그리고 적당한 물의 온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탕에서 나와 마시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 한 잔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갈 때의 그 짜릿한 대비가 여전히 생생하다.
다음 날 아침, 조식 식당에서 마주한 대만식 식사는 기대 이상의 감동이었다. 짭조름한 풍미와 담백함이 어우러진 맛은 낯선 도시에서의 긴장을 부드럽게 녹여주었다. 따뜻한 두유 한 잔을 머금으며 창밖의 흐린 하늘을 보았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6월의 비는 우리를 가두었지만, 덕분에 우리는 더 오래 서로의 곁에 머물 수 있었다. 호텔 내의 우아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분위기만큼이나, 비 오는 날의 실내는 아늑하고 밀도가 높았다.
오후에는 근처에서 잘 익은 망고 하나를 샀다. 노란 과육이 혀끝에 닿는 순간, 끈적한 습기마저 달콤한 기억으로 변했다. 과즙이 손가락에 묻어 끈적거리는 것조차 개의치 않고 우리는 아이처럼 웃었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감각. 그것이 여행의 진짜 목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관광지의 풍경보다, 깨끗한 수건의 보드라운 촉감과 적당한 실내 온도, 그리고 함께 나누어 먹는 과일 한 조각이 더 선명한 무늬로 남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렸고, 우리는 나란히 누워 서로의 숨소리를 세고 있었다.
- 17층 대욕장에서 타이베이의 전경을 바라보며 몸을 녹여봐.
- 정갈한 대만식 조식으로 느긋한 아침을 시작해보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