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기를 했다. 이번 여행에서 누가 가장 먼저 짐을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걸 빼먹을지에 대해. 결과는 허무할 정도로 뻔했다. 셋 다 어댑터를 안 가져온 것이다. 에어컨 바람이 서늘한 로비에서 충전기 하나를 두고 순서를 정하던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빨갛게 점멸하는 배터리 숫자에 집착하며 서로를 탓하던 그 어처구니없는 풍경이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채소가 50가지나 된다는 건강 훠궈집을 찾았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젓가락이 향한 곳은 야들야들한 고기와 달콤한 스페인식 아이스크림뿐이었다. 뽀얀 김이 서린 안경 너머로 서로의 얼굴이 뭉개져 보였고, 우리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한참을 낄낄거렸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질감이 느껴질 때쯤에야 비로소 배가 부르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분명 5분 거리라고 했잖아."
"내 기준에서는 5분이었어."
다안구의 4월 공기는 눅눅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형편없는 길치 능력을 정중하게 칭찬했다. "너의 방향 감각은 정말 예술이야"라는 말은 사실 "당장 지도 다시 봐"라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렇게 헤매다 발견한 낯선 골목의 작은 가게들. 계획되지 않은 경로가 주는 뜻밖의 다정함이 좋았다.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토토 비데의 수많은 버튼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최첨단 변기라는 말에 꽂힌 친구 하나가 10분 동안 진지하게 버튼을 눌러댔다. 우리는 그것을 '현대 문명의 왕좌'라고 부르기로 했다. 무의미한 기능에 감탄하며 낄낄거리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매끄러운 플라스틱의 촉감과 쾌적한 물줄기는 확실히 만족스러웠다.
Yi Pin Shang Lv의 루프탑 테라스에 올랐다. 저 멀리 타이베이 101 빌딩이 도시의 이정표처럼 서 있었다. 거창한 감상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적당히 무거운 4월의 밤바람이 뺨을 스쳤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도시의 낮은 웅성거림을 들었다. 누군가 입을 열어 이 정적을 깨기 전까지, 도시와 우리 사이에 놓인 그 적당한 거리감이 편안했다.
시몬스 매트리스는 생각보다 더 깊고 아늑했다. 몸이 푹 파묻히는 그 느낌. 록시땅 어메니티의 은은한 허브 향이 손끝에 머물렀다. 빳빳하고 하얀 시트의 바스락거리는 촉감이 피부에 닿을 때, 비로소 여행의 긴장이 풀리며 진짜 휴식이 시작된 기분이 들었다. 천장의 하얀 여백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졌다. 우산은 없었고, 옷은 금세 눅눅하게 젖어 들었다. Yi Pin Shang Lv로 돌아오는 길, 젖은 아스팔트의 비릿한 냄새와 녹나무 어린잎의 싱그러운 향기가 섞여 났다. 무거워진 운동화가 발걸음을 붙잡았지만, 함께 젖어 있다는 사실이 묘한 동질감과 안심을 주었다.
결국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은 그저 누워있는 것이었다. 쾌적한 방의 온도, 적당한 조명, 그리고 옆에서 규칙적으로 코를 고는 친구의 숨소리.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무용한 것들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다시 이곳에 와서 함께 게을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으로 101 빌딩의 끝자락이 희미하게 보였다.
- 다안구 골목의 작은 카페들을 정처 없이 걸어봐.
- Yi Pin Shang Lv 루프탑에서 멍하니 야경 보는 시간을 꼭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