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0, 로비와 거리의 경계
아이의 운동화 한 짝이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5월의 타이베이는 공기 자체가 거대한 물방울 속에 잠긴 듯했다. 습도는 80퍼센트를 가리키고, 피부에 닿는 공기는 덜 마른 수건처럼 무겁고 끈적였다. "아빠, 우산이 너무 무거워!" 첫째는 투덜대며 어깨를 늘어뜨렸고, 둘째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을 보겠다며 자꾸만 걸음을 멈춰 세웠다.
Yi Pin Shang Lv의 로비를 나설 때, 직원이 건넨 가벼운 목례에는 과하지 않은 정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담백한 친절이 낯선 도시에서의 긴장을 묘하게 풀어주었다. 아침 식사로 근처에서 산 따뜻한 또우장과 요우티아오를 손에 쥐었다. 갓 튀겨낸 밀가루의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가 습한 공기의 무게를 잠시 밀어냈다. 아이들은 입가에 하얀 콩물을 묻힌 채 서로의 얼굴을 보며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특별할 것 없는 소란스러운 아침이었지만, 그 무질서함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도시의 습기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14:00, 다시 돌아온 방
양명산에서 마주한 백합꽃은 지나치게 하얘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그 시린 하얀색이 망막에 잔상처럼 남았을 때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다시 쏟아졌다. 호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시몬스 매트리스 위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섬유가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감각.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가 정체되어 있던 방 안의 공기를 기분 좋게 흔들었다.
나는 젖은 신발을 말리기 위해 드라이기를 꺼냈다. 위잉거리는 뜨거운 바람 소리가 젖은 천을 말리는 소음과 섞이고, 그 옆에서 뒹굴며 장난치는 아이들의 소란이 겹쳐졌다. 이 부조리한 조화가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욕실에서부터 록시땅 어메니티의 은은한 향기가 흘러나와 코끝을 간질였다. 인위적이지 않은 숲의 향이었다. 방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캐리어를 펼치면 발 디딜 틈이 거의 없었지만, 오히려 그 좁음이 우리 가족을 더 밀착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팔꿈치가 내 옆구리를 찌르고, 아이들의 작은 발가락이 내 종아리에 닿는 거리. 좁은 공간이 강제하는 이 친밀함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충분했다.
19:00, 창밖의 도시 불빛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슈프림 패밀리 룸의 창가에 섰다. 멀리 타이베이 101 타워가 보였다. 화려한 조명들이 습한 밤공기에 번져 마치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제 조금 지쳤는지, 누가 더 큰 베개를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낮은 목소리로 진지한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잠시 토토 비데가 설치된 욕실로 들어갔다. 버튼 하나로 조절되는 정교한 수압과 온도가 지친 피부에 닿는 순간,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도시의 소음과 가족의 소란함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유일한 시간. 오직 물소리만 들리는 그 짧은 정적이 무엇보다 달콤했다. 세면대의 타일은 미지근했고, 수건은 적당히 빳빳해 피부에 닿는 촉감이 상쾌했다. 다시 방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어느새 서로 엉겨 붙어 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5월의 밤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창밖의 도시 불빛이 방 안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고, 우리는 그 빛의 조각들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거창한 대화는 없었지만,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에서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꽉 찼다.
22:00, 소란이 걷힌 자리
아이들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방 안에는 이제 에어컨의 낮은 웅웅거림과 가끔 복도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발소리만 남았다.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행이란 결국 낯선 곳에 가서 평소와 똑같은 소란을 겪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 Yi Pin Shang Lv에서의 소란은 조금 결이 달랐다. 낯선 도시의 습도와 낯선 침대의 촉감이 일상의 짜증을 묘한 흥분과 설렘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까 말려둔 신발을 만져보았다. 이제는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아주 사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만약 누워있는 것 자체가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면, 이 침대는 완벽한 목적지였다. 60퍼센트의 힘만 쓰며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무용한 것들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 이런 것일까. 내일은 또 어디서 길을 잃고, 어떤 아이의 투정을 듣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등 뒤로 느껴지는 매트리스의 안락함과 곁에서 쌔근거리는 아이들의 규칙적인 숨소리면 충분했다. 다시 이곳에 와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젖은 운동화가 완전히 말라 있었다.
- 양명산의 백합꽃을 보러 갈 때는 반드시 튼튼한 우산을 챙길 것.
- Yi Pin Shang Lv의 시몬스 매트리스 위에서 아무 생각 없이 굴러다녀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