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심충덕역에서 내려 호텔까지 걷는 길은 300미터 남짓이었다. 9월의 타이중 공기는 28도 정도로, 숨을 들이마시면 폐 끝에 미지근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살짝 걸리는 묘한 온도였다. 우리는 별다른 계획 없이 걷기 시작했다. 서로의 보폭이 맞지 않아 한 사람이 조금 빨리 걷다가 다시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엉킨 실타래의 끝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속도를 확인하며 걷고 있었다. "조금만 천천히 가자." 누군가 나지막이 뱉은 말에는 서두르고 싶지 않은 여행자의 마음과, 상대의 호흡을 놓치고 싶지 않은 조바심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Zhong Ke Da Fan Dian`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로비 근처에 자리 잡은 회전목마였다. 정갈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뜬금없이 놓인 알록달록한 말들. 기계적인 회전음과 함께 흩날리는 원색의 잔상들이 이질적이었지만, 그 풍경이 싫지 않았다. 효율과 정돈을 강조하는 도시의 공간에 놓인 무용한 장난감이라니. 우리는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웃음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유년의 어느 지점을 건드린 것 같았다.
근처 타이중 민속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먹은 복주 의면은 이번 여행의 가장 선명한 미각으로 남았다. 쫄깃하게 씹히는 면발 위로 짭조름한 고기 고명이 얹어져 있었고,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온몸의 긴장이 느슨하게 풀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안경 너머의 시야가 잠시 흐릿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그저 면을 씹는 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주변의 소음, 그리고 얇게 펴진 오후의 햇살이 우리의 어깨 위로 조용히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오후였다.
오후 11시, 방 안의 소음이 잦아든 시간
객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예상보다 훨씬 넓은 공간감이었다. `Zhong Ke Da Fan Dian` 특유의 따스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디자인과 넉넉한 방 크기는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금세 지워주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몇 걸음을 더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짐을 대충 던져놓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빳빳하게 다려진 흰 시트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촉감이 피부에 닿았다. 비즈니스 호텔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소란스러웠던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우리는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낮 동안의 소란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깊은 고요함이 들어찼다. 밖에서는 가끔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지만, 두꺼운 유리창 너머의 소음은 오히려 방 안의 안락함을 더욱 강조하는 배경음악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창한 미래나 약속 같은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내일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혹은 아까 본 회전목마의 말 중 어떤 색이 가장 예뻤는지 같은 사소하고 무해한 것들이었다. "내일은 좀 더 늦게 일어날까?" 그 작은 제안에 우리는 함께 킥킥거리며 웃었다.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가 조금씩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억지로 풀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곳의 정갈한 공기와 적당한 온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세심하게 정돈된 어메니티와 깨끗한 수건이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컸다.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을 다 달성한 것 같았다. 굳이 무언가를 더 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함께 누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 좋았다. 9월의 밤바람이 창틈으로 아주 조금 스며들었고, 우리는 서로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천천히 깊은 잠 속으로 고요해졌다.
창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던 도시의 불빛이 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