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의 차: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과 찻잎이 천천히 고요해지는 고요한 리듬.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터뜨린 요란한 수다와 찻잔이 받침대에 닿을 때마다 들리던 경쾌한 챙그랑 소리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
슈페리어 트윈의 침대: 빳빳하게 다려진 시트의 서늘한 감촉과 구름처럼 푹신한 베개의 포근함. 식물원을 걷느라 지친 우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몸을 던졌을 때의 묵직한 충격, 그리고 그 위에서 뒹굴며 나눈 실없는 농담들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창틀의 작은 먼지: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짙푸른 산등성이와 5월의 눅눅한 공기.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자'며 비장하게 선언했던 우리의 게으른 결심과, 누군가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하며 낄낄거리던 찰나의 순간을 지켜보았다.
방 안의 슬리퍼: 바닥에 끌리는 서걱거리는 마찰음과 현관 앞의 분주한 발걸음. 누군가는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누군가는 슬리퍼를 신은 채 거실을 가로지르던 그 소란스러운 아침의 풍경과 서로의 발을 밟으며 투덜대던 귀여운 소음들을 기억한다.
욕실의 거울: 표면에 맺힌 송골송골한 물방울과 은은하게 퍼지는 비누 향기. 양치질을 하며 서로의 헝클어진 머리와 부은 눈을 보고 배꼽을 잡았던 우리의 민낯, 화려한 관광지에서의 모습이 아닌 가장 편안하고 엉망인 상태의 우리를 기록한 유일한 목격자다.
만약 이 방의 물건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말한다면
아마 그들은 우리를 '계획만 거창한 사랑스러운 게으름뱅이들'이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는 분명 타이중의 구석구석을 탐험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old school行旅에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가장 열정적으로 탐험한 것은 11층 객실의 눈부신 채광과 몸을 깊숙이 파묻게 만드는 침대의 안락함이었다.
5월의 타이중은 공기가 묵직했다. 오후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먼 천둥소리에 우리는 외출을 포기하고, 1층 공유 공간의 아늑한 분위기를 뒤로한 채 방 안에 모여 앉아 백합꽃 향기가 섞인 바람을 맞았다. "그냥 여기서 계속 자면 안 될까?"라는 누군가의 엉뚱한 질문에 모두가 격하게 공감하며 웃어젖히던 순간. 이 정갈하고 현대적인 공간과 우리의 무질서함이 묘하게 어우러져, 오히려 더 깊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성취하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저 함께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다음 끼니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었다. 효율적이지 않은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느꼈다.
방을 나서는 길, 눅눅했던 공기는 어느새 다정한 무게가 되어 우리를 감쌌다.
- 타이중 식물원의 초록빛을 온전히 즐기려면 오전 일찍 서두르는 것이 좋다.
- old school行旅의 포근한 침대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치를 누려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