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의 우리에게.
타이중의 12월, 코끝을 스치던 건조한 공기와 아무런 계획 없이 호텔 침대에 파묻혀 천장만 바라보던 그 나른한 오후를 기억하니? 영양가 없는 대화 속에 섞여 있던 우리의 웃음소리가 문득 그리워질 것 같아.
5년 후에도 여전히 선명할 찰나의 조각들
압도적인 로비의 정적과 금빛 잔상. Zhang Rong Gui Guan Jiu Dian ( Tai Zhong )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마주한 거대한 공간. 층고가 너무 높아 내 낮은 목소리가 어디까지 울려 퍼질지 궁금해졌고,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에 반사된 은은한 조명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을 줬어. 우리는 그 웅장한 정적 속에서 서로의 캐리어를 굴리며 킥킥거렸지.
고급스러운 공간 속의 엉뚱한 게임. 정갈한 유니폼의 직원들과 격식 있는 분위기가 흐르는 로비 한편에서, 우리는 조이콘을 꽉 쥐고 닌텐도 스위치 게임에 열중했어. "여기서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가장 정제된 공간에서 가장 무질서한 행동을 한다는 묘한 쾌감이 있었지. 승패보다는 그 부조화스러운 상황이 주는 해방감이 더 컸던 시간이었어.
빳빳한 시트와 다정한 손길. 리노베이션을 마친 객실의 침대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몸을 던졌을 때 느껴지는 서늘한 면의 촉감이 기분 좋게 피부에 닿았어. 특히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정성스럽게 접혀 있던 옷가지들을 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챙겨주는 다정한 온기를 느꼈지. 12월의 선선한 바깥 공기와 대조되는 포근한 이불 속은 완벽한 도피처였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아침의 식탁. 갓 지어낸 흰죽의 구수한 향기와 함께 곁들인 노란 치즈의 짭조름한 맛. 특히 대만 현지의 풍미가 담긴 고구마와 옥수수순 같은 소박한 농산물들이 입안에서 정겹게 어우러졌어. "내일은 진짜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고 속삭이며 천천히 씹어 삼키던 그 온기는,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우리를 충만하게 만들었지.
5년 뒤, 이 기록의 봉인을 해제한다면
아마 우리는 그때 정확히 어떤 길을 걸었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잊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Zhang Rong Gui Guan Jiu Dian ( Tai Zhong )의 높은 층에서 내려다본 타이중 시내의 흐릿한 불빛과,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낮은 웃음소리는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남아 있을 거야. 따뜻한 물을 가득 받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 찰나의 고요함, 그리고 피부에 닿던 습한 온기까지.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오직 서로의 존재에만 집중했던 그 무용(無用)한 시간들이, 사실은 우리 관계의 가장 밀도 높은 조각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되겠지.
짙은 남색의 타이중 밤하늘 아래, 우리가 나눈 온기만은 선명하기를.
- 국립자연과학박물관의 거대한 공룡 모형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떠들어볼 것
- 호텔 1층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낯선 거리의 풍경을 관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