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도시 위로 흩뿌려진 빛의 조각들
2월의 신베이는 낮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이 지배하는 도시다. 공기는 눅눅했고 피부에 닿는 온도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애매하게 머물렀다. 그런 무채색의 풍경을 뚫고 Tai Bei Ji Xian Shang Lv에 들어섰을 때,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로비가 아니라 엘리베이터의 버튼들이었다. 이 호텔은 층마다 서로 다른 테마를 품고 있는데, 우리가 머문 곳은 '만화유리' 테마의 층이었다.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천장과 벽면의 유리창을 통과한 빛이 굴절되어 바닥 위에 다채로운 색의 파편들로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첫째는 그 빛깔들이 꼭 알록달록한 사탕 같다고 외쳤고, 둘째는 유리창에 작은 손바닥을 딱 붙인 채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의 세상은 여전히 잿빛이었지만, 유리창이라는 필터를 거쳐 들어온 빛은 방 안을 환상적인 색채로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과장된 화려함이 아니라, 빛과 색이 만들어내는 단순하고도 다정한 유희였다. 아이들은 그 미묘한 색의 차이를 발견하려 복도를 몇 번이고 왕복했고, 그 천진난만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의 습기가 조금씩 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정적을 깨우는 리듬과 다정한 소란함
방에 들어서자마자 둘째가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툭 하는 투박한 소리 대신 가벼운 터치음이 들려왔다. 현대적인 호텔답게 모든 것이 매끄럽게 작동했지만, 가족 여행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결코 매끄럽기만 한 법이 없다. 아이들이 침대 위에서 방방 뛰기 시작하자 방 안은 금세 웃음 섞인 소란함으로 가득 찼다. 복도 너머로는 다른 가족들의 낮은 대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와 이곳이 여행자들의 안식처임을 상기시켰다. 특히 옥상에 마련된 코인 세탁실에 갔을 때, 세탁기가 돌아가며 내는 일정한 진동음이 발바닥을 통해 묵직하게 전해졌다. 윙윙거리는 그 기계적인 소음이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혀 주었다. 젖은 옷가지들이 회전하며 내는 규칙적인 마찰음, 그리고 그 옆에서 낮게 속삭이는 어느 부부의 다정한 대화. 거창한 음악은 없었지만, 생활의 소음들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포근한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아이들은 그 소리가 마치 거대한 로봇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며 낄낄거렸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호텔 전체가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를 녹이는 온기와 보송한 감촉
욕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눈이 시릴 만큼 반짝이는 은빛 샤워헤드였다. 물을 틀자 적당한 압력의 온수가 폭포처럼 쏟아졌고, 2월의 눅눅한 추위에 젖어 뻣뻣해졌던 몸이 순식간에 말랑하게 풀렸다. 뜨거운 물줄기가 피부에 닿는 감각이 선명해질수록 밖에서의 긴장감도 함께 씻겨 내려갔다. 아이들은 매끄러운 욕조 표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물놀이에 열중했고, 적당한 온도의 물속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맑아졌다. 씻고 나와 몸을 던진 침대는 생각보다 단단하면서도 포근하게 등을 받쳐주었다. 빳빳하게 다려진 면 시트의 서늘함이 피부에 닿았다가, 이내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워지는 그 찰나의 과정이 무척 좋았다. 욕실에 고정된 헤어드라이어의 스위치를 딸깍거리며 바람의 세기를 조절할 때 느껴지는 단순한 조작감이 손끝에 기분 좋게 남았다. 밖은 여전히 습하고 서늘했지만, Tai Bei Ji Xian Shang Lv의 방 안에서 마주한 모든 촉감은 안온했다. 젖은 발바닥이 닿는 타일의 적당한 온기가 여행의 피로를 다정하게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입안에서 터지는 새콤한 계절과 쫄깃한 기억
6층에 위치한 굿모닝 카페에서의 아침은 정갈하고 단순했다. 뷔페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인 테이블 위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매실에 절인 작은 방울토마토였다. 한 입 베어 물자 새콤달콤한 즙이 팡 하고 터지며 입안 가득 퍼졌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잠들어 있던 미각을 깨우는 그 맛은 마치 이른 봄의 전령사 같았다. 아이들은 갓 구운 빵에 노란 버터를 듬뿍 발라 먹으며, 빵의 바삭함과 버터의 부드러움이 섞이는 소리를 즐겼다. 호텔을 나와 근처 용련사 시장으로 향했을 때, 우리는 이곳의 명물인 체자이몐이라는 컷팅 국수를 만났다. 시장 골목의 작은 가게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면발은 놀라울 정도로 쫄깃했고, 국물은 담백하여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화려한 미식은 아니었지만, 추운 겨울 아침에 마주한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은 그 어떤 성찬보다 충분했다. 아이들은 면발이 마치 고무줄 같다며 입술을 내밀고 재미있어했다. 특별한 요리는 아니었으나, 그 순간의 허기를 정확하게 채워준 그 맛은 여행의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도시의 소음과 대비되는 깨끗한 안식의 향기
호텔 로비에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는 특유의 향기가 있었다. 강하지 않으면서도 정돈된 느낌의 중립적인 향이었다. 그것은 밖의 무질서한 냄새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2월의 신베이 거리에는 눅눅한 흙냄새와 길거리 음식의 기름진 향, 그리고 차가운 오존 향이 뒤섞여 있었다. 특히 신베이 등불 축제장으로 향했을 때, 수많은 인파가 뿜어내는 열기와 함께 달콤한 솜사탕 향기가 공기 중에 끈적하게 떠다녔다. 하지만 다시 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갓 세탁한 시트에서 나는 은은한 세제 향이 나를 포근하게 맞이했다. 그 향기를 맡는 순간 비로소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탁 풀렸다. 옥상 세탁실에서 갓 건조된 옷가지들이 내뿜는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냄새는 겨울 여행이 주는 작은 사치이자 위로였다. 습한 도시의 냄새를 깨끗이 지워내고 순수한 향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비로소 이곳이 우리의 완벽한 안식처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의 잠든 얼굴 위로 알록달록한 유리창의 빛이 머물렀다.
- 2월의 신베이 등불 축제는 인파가 매우 많으므로, 가급적 도시철도를 이용해 방문하는 것을 권한다.
- 용련사 시장의 체자이몐 가게들은 규모가 작고 소박하므로, 현금을 준비해 방문하는 것이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