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공원역 2번 출구로 나왔다. 숨을 들이키는 순간 눅눅하고 뜨거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지열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일렁였고, 우리는 서로의 땀 젖은 얼굴을 보며 동시에 외쳤다. "여긴 그냥 거대한 사우나야!" 그러다 호텔 인디고 가오슝 Central Park의 로비로 미끄러지듯 들어선 순간, 피부를 스치는 서늘한 냉기에 짧은 탄성이 터졌다. 생존했다는 안도감이 전율처럼 밀려왔다.
선명한 노란빛의 망고 빙수를 주문했다. 숟가락이 얼음을 파고들 때마다 서걱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혀끝이 아릴 정도로 진한 단맛이었지만, 정수리까지 전해지는 짜릿한 냉기가 몽롱했던 정신을 깨웠다. 입가에 묻은 끈적한 시럽을 닦아내며 우리는 말없이 빙수 속으로 고요히 머무했다. 6월의 가오슝에서 이보다 더 완벽한 구원은 없을 것 같았다.
"지도 누가 챙겼어?" 정적이 흘렀다. 서로의 눈동자 속에 당혹감이 서렸다. 결국 아무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허망한 결론에 도달했다. 낯선 길 한복판에서 멍하니 서 있던 그때, 누군가 툭 던졌다. "그냥 걷자. 어차피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뭐." 그 무책임한 낙천성에 우리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길을 잃는 것이 이번 여행의 유일한 계획이 된 순간이었다.
졸업 기념이라며 냅킨을 접어 조잡한 고깔모자를 만들어 썼다. 호텔 로비 한가운데서 셋이 나란히 쓰고 서 있자, 지나가던 직원이 우리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이 황당함인지 환영인지에 대해 한참을 토론했지만, 사실 결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 자체가 주는 유치한 해방감이 좋았으니까.
11층 객실 창가에 기대어 섰다. 발아래로 중앙공원의 짙은 초록색 잔디가 파도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다. 유리창 너머의 바람은 여전히 뜨겁게 요동치고 있었지만, 두꺼운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둔 풍경은 정지 화면처럼 고요했다. 멀리서 전철이 레일을 긁으며 지나가는 희미한 소음이 들려왔다. 특별할 것 없는 도시의 조각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계속 시선이 머물렀다.
호텔 인디고 가오슝 Central Park의 객실은 항구 도시의 정체성을 닮아 깊고 아늑했다. 빳빳하게 다려진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았고, 요청해 받은 푹신한 거위 털 베개는 머리를 깊숙이 감싸 안았다. 욕실의 비누에서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은은하게 풍겼다. 적당한 조도와 쾌적한 온도 속에 대자로 뻗어 천장을 바라보니, 이곳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을 다 이룬 기분이었다.
루프탑 바 피어 넘버 원에 올랐다. 칵테일 잔 속에서 얼음이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마침 우리가 좋아하는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오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대화를 멈췄다. 도시의 소음이 음악의 선율 속에 부드럽게 섞여 들어왔다. 억지로 무언가를 느끼려 애쓰지 않아도, 피부에 닿는 밤공기 자체가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방으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일의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3분도 안 되어 '늦잠 자기'로 만장일치 합의를 보았다. 6월의 가오슝은 지나치게 뜨거웠고, 호텔의 에어컨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이 나른함이 좋았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아마 더 많이 누워있을 것 같다.
창밖으로 보랏빛 밤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 루프탑 바 피어 넘버 원에서 야경 보며 칵테일 한 잔, 이건 진짜 꼭 해봐.
- 호텔 앞 중앙공원을 가볍게 산책하고 바로 에어컨 밑으로 도망치는 코스 추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