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의 우리에게. 여전히 침대 속의 안온함을 사랑하고 있니, 아니면 조금은 부지런한 어른이 되었을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다만 화롄의 느릿한 공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완벽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만은 꼭 기억해줘.
5년 뒤에도 선명하게 떠오를 네 가지 장면
6미터 천장 아래서 흩어지던 작은 목소리. Fu Kang Da Fan Dian 로비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웅장한 천장 높이가 우리의 시시한 농담들을 공중으로 흩뿌리는 기분이었다. 전 시장의 관저였다는 공간의 역사만큼이나 깊은 정적이 흘렀고,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구두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여기 정말 넓다"라는 낮은 읊조림조차 공간의 부피에 밀려 아득하게 들렸고, 그 압도적인 개방감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여행의 해방감을 느꼈다.
입술 끝에 남은 붉은 고추기름의 온기. 중산로의 소란스러운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찾아간 작은 가게에서 맛본 홍유초수. 숟가락 끝에서 찰랑이던 붉은 기름이 얇은 만두피를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을 때, 입안 가득 퍼진 매콤한 향과 탱글한 새우의 식감은 강렬했다. 9월의 눅눅한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던 오후였지만, 뜨거운 육즙 한 입에 모든 불쾌함이 씻겨 내려갔다. 서로의 입가에 묻은 빨간 흔적을 보며 낄낄거리던 그 유치한 웃음소리가 이 여행의 가장 생생한 색채로 남을 것 같다.
리위탄의 인공적인 빛과 서늘한 밤공기. 호수 위를 수놓은 화려한 빛들이 물결에 뭉개지며 몽환적인 보랏빛과 푸른빛의 파동을 만들어냈다. "로맨틱하다"고 속삭이려던 찰나, "아, 춥다!"라고 외치며 어깨를 움츠린 너의 솔직함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충분했던 밤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밤바람과 호수 특유의 눅눅한 물비린내가 섞여 들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함께 이곳에 서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창밖의 푸른 산 그림자와 바스락거리는 하얀 시트. Fu Kang Da Fan Dian 객실의 커다란 창은 화롄의 능선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아내고 있었다. 오후의 비스듬한 햇살이 쏟아지는 침대 위에서 우리는 한참을 뒹굴었다. 바스락거리는 고밀도 시트의 서늘한 촉감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마음까지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욕실과 분리된 넓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멍하니 산의 실루엣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던 시간, 그리고 동다먼 야시장까지 걷기 싫어 15분의 거리를 두고 벌였던 게으른 토론들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가장 밀도 높은 휴식이었다.
다시 이 기록을 펼쳐볼 5년 뒤의 어느 날
아마 우리는 어떤 일정을 짰고 어디를 방문했는지 같은 구체적인 정보는 모두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 식탁에서 풍기던 구수한 죽의 냄새, Fu Kang Da Fan Dian 로비에서 느꼈던 그 묘한 정적,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매콤한 음식의 잔향은 불쑥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기억은 원래 그렇게 파편적으로, 가장 감각적인 부분부터 작동하니까. 중요한 건 우리가 그때 함께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는 안도감이다. 그 무용함이 주는 평온함이, 치열하게 살아갈 미래의 우리에게 다정한 위로와 쉼표가 되어줄 것 같다.
구겨진 호텔 영수증 한 장과 9월의 투명한 하늘.
- 붉은 고추기름이 듬뿍 들어간 홍유초수를 꼭 드셔보세요. 입술이 조금 끈적여도 괜찮습니다.
- Fu Kang Da Fan Dian의 넓은 창가에 기대어 아무 생각 없이 산 그림자가 변하는 것을 구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