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조금 가팔랐지만, 그 끝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정갈하게 놓인 슬리퍼들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발보다 한참은 큰 슬리퍼를 신고는 뒤꿈치가 덜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복도를 누볐다. '탁, 탁' 하고 빈 공간을 울리는 경쾌한 소리가 마치 이곳에 들어오기 위한 비밀 암호처럼 들렸다. "엄마, 여기는 거대한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것 같아!" 아이의 눈에 이곳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선택받은 이들만 들어올 수 있는 신비로운 아지트였을 것이다. 로비의 조명은 포근한 우윳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9월의 눅눅한 습기를 말끔히 걷어낸 쾌적한 공기가 피부에 닿아 상쾌함을 더했다. 아이는 슬리퍼가 너무 커서 걷기 힘들다며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정작 호기심 가득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방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그 작은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 낯선 공간이 주는 뜻밖의 다정함에 마음이 놓였다.
파란 벽지 너머로 펼쳐진 작은 지중해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순백의 벽과 짙은 파란색의 강렬한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소울맵 호스텔의 그리스 테마 룸에 들어선 순간, 아이는 벽지를 조심스레 손끝으로 쓸어보더니 "여기가 진짜 그리스야?"라고 물었다. 단순한 페인트칠일 뿐이지만, 아이의 상상력 속에서 방 전체는 순식간에 지중해의 어느 눈부신 해안가로 변모했다. 2층 침대의 금속 프레임이 아이의 움직임에 따라 '찌익' 하는 작은 비명을 질렀고, 아이는 그것을 '침대가 건네는 다정한 인사'라고 정의하며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벽면의 국제 표준 콘센트와 씨름하던 아이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플러그가 들어가지 않자 낑낑거리며 힘을 주던 아이는 결국 포기하며 말했다. "벽이 나랑 숨바꼭질 게임을 하고 있어!" 그 무용한 시도가 가져다준 짧은 웃음이 방 안에 몽글몽글하게 피어올랐다. 복도 너머 공유 주방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갓 볶은 커피 향과 낯선 여행자들의 낮은 속삭임이 문틈으로 스며들어 공간의 입체감을 더했다. 아이는 좁은 침대 위에 엎드려 가방 속 장난감들을 하나둘 늘어놓았고, 그 작은 공간은 금세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견고한 아이만의 요새가 되었다. 화려한 시설은 없었지만, 아이의 눈에는 모든 구석이 탐험해야 할 보물지도로 보였던 모양이다.
아이의 숨소리가 잦아든 뒤 찾아온 온전한 정적
아이가 깊은 잠에 빠져들고 나서야 방 안에는 비로소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9월의 창화는 낮의 열기를 빠르게 식히며 서늘한 밤공기를 내뿜고 있었다. 창문을 살짝 열자,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며 도시의 리듬을 전했다. 그제야 낮에 맛본 아삼 육원의 진한 풍미가 뒤늦게 혀끝을 자극했다. 쫄깃한 피 속에 가득 찼던 뜨거운 육즙과 그 위를 덮은 진득하고 달콤한 간장 소스의 조화. 짠맛보다 단맛이 먼저 닿던 그 생경한 감각이 여전히 입안을 맴돌았다.
삼민 시장에서 먹었던 돼지덮밥의 고소한 기름 냄새도 함께 떠올랐다. 소울맵 호스텔의 빳빳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부드럽고 조금은 낡은 침구는 오히려 긴장을 풀어주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한 공간, 인생의 60퍼센트 정도의 힘만 쓰고 나머지는 온전히 비축해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천장의 단순한 전등갓이 만드는 따스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여행이란 결국 이렇게 낯선 풍경 속에서 가장 익숙한 가족의 숨소리를 확인하며 안도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지 않은 밤이었다. 아니, 충분히 완벽한 밤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창화의 밤하늘은 적당히 낮게 내려앉아 우리를 감싸 안았다.
- 아이와 함께 아삼 육원의 달콤하고 짭조름한 소스 맛을 경험해 보세요.
- 부채꼴 차고까지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며 9월의 선선한 공기를 만끽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