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진짜 낚였네. 이게 그냥 세트장이었다고?" 지훈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캐리어를 쾅 내려놓았다. 로비의 화려한 철도 테마 장식들이 무색하게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그러니까. 근데 꽤 그럴싸하잖아. 분위기 있네." 민지가 킥킥거리며 대꾸하자, 지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분위기는 무슨. 그냥 가짜잖아. 우리 지금 가짜 역에 체크인한 거야?" 나는 빳빳한 시트의 감촉을 느끼며 짐가방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여행은 다 가짜 같은 거 아니겠냐. 여기 누워서 잠만 잘 자면 장땡이지." 내 말에 둘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와, 진짜 낭만이라고는 일 그램도 없네!" 지훈이 툴툴거렸지만, 정작 본인이 가장 먼저 침대로 다이빙했다.
철길 위의 안식, 낯선 온도가 주는 위로
지우하오 행관의 '팔 번 플랫폼' 테마는 솔직히 과했다. 하지만 그 과함이 주는 묘한 해방감이 있었다. 진짜 역이라면 티켓을 끊고, 시간을 확인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초조해했겠지만, 이곳은 그럴 필요가 없는 정지된 시간의 무대다. 그냥 가짜 플랫폼 위에 누워 있으면 그만이다. 십이월의 창화는 공기가 건조했다. 창문을 살짝 열자 십팔 도의 서늘한 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고, 그 서늘함이 피부에 닿는 순간 묘한 쾌적함이 전신을 감쌌다.
우리가 묵은 가족용 스위트룸은 공간이 넉넉해 서로의 숨소리가 방해되지 않았다. 몸을 눕히면 적당한 반발력이 느껴지는 매트리스가 등을 단단히 받쳐주었고, 빳빳하게 다려진 흰 시트에서는 은은한 세제 향과 함께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에어컨의 낮은 기계음이 방 안의 정적을 부드럽게 메웠다. 화장실 타일의 차가운 촉감이 발바닥에 닿았지만, 곧이어 쏟아진 뜨거운 물이 어깨를 감쌀 때 비로소 이곳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호텔 밖으로 나서면 창화의 겨울 햇살이 쏟아졌다. 팔괘산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했고, 공기 중에는 마른 흙내음과 희미한 차 향기가 섞여 있었다. 팔괘산 대불 광장에서 열린 '월영등축제'의 등불들은 짙은 주황색 빛을 띠며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그 빛은 화려했지만 요란하지 않았고, 마치 밤하늘의 별이 땅으로 내려앉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근처에서 먹은 육원은 소스가 끈적하고 달았으며, 아삭하게 씹히는 죽순의 식감이 일품이었다. 후식으로 마신 파파야 우유는 끝맛이 살짝 쌉쌀했는데, 그 쌉쌀함이 오히려 입안을 정돈해 주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선형 차고의 오래된 철제 냄새와 기름때 낀 바닥의 거친 질감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오후의 시간은 밀도 있게 채워졌다. 지우하오 행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이질적인 편안함은 여행의 긴장을 기분 좋게 풀어주었다.
새벽 세 시, 낮은 목소리로 겹쳐지는 진심
"근데 말이야, 우리 내일 진짜 다 돌 수 있을까?" 민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방 안은 어두웠고, 작은 스탠드 조명 하나만이 노란 빛을 흩뿌리며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못 돌면 어때. 그냥 여기서 더 자면 되지." 내가 답하자 지훈이 킥킥거렸다. "너는 진짜 인생을 너무 효율적으로 안 살아서 탈이야." "효율? 여행 와서 효율 따지는 게 제일 멍청한 짓이지." "그건 인정. 근데 솔직히 여기 침대 진짜 좋다. 나 그냥 여기서 살고 싶어." "꿈 깨. 내일 체크아웃 열두 시니까 그때까지나 최대한 누워있어." 우리는 한참 동안 별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낮의 소란함이 걷히고 나니, 서로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특별한 약속이나 다짐 같은 건 없었지만, 지금 이 온도와 적당히 취기가 오른 공기, 그리고 푹신한 침대가 주는 안락함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가짜 역은 어느새 진짜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창밖으로 십이월의 희미한 달빛이 가짜 플랫폼의 지붕 위에 가만히 내려앉아 있었다.
- 쌉쌀한 끝맛이 매력적인 창화 현지 파파야 우유를 꼭 마셔볼 것.
- 팔괘산 월영등축제의 주황색 조명 아래서 느리게 걷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