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이라는 정직한 유혹
9월의 타오위안은 묘한 계절감 속에 잠겨 있었다. 한낮의 열기는 여전히 끈적하게 피부에 달라붙었지만, 해가 질 무렵이면 습한 바람 끝에 아주 조금의 서늘함이 묻어 나왔다. 우리는 77 예술마을의 낡은 목조 복도를 걸으며 발밑에서 들려오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음악처럼 감상했다. 누군가는 그 소리가 세월의 흔적이라 했고, 나는 그저 오래된 나무가 내뱉는 깊은 한숨이라고 생각했다. 지경예술제의 거대한 조형물들 사이를 지날 때는 마치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기분이었다.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그저 강렬한 색감이 좋아서, 혹은 모양이 기괴해서 한참을 멍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적당히 지친 몸을 이끌고 Gu Hua Hua Yuan Fan Dian으로 돌아오는 길, 늘 그렇듯 누군가 배가 고프다고 선언했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점심에 샐러드 한 접시로 버텼던 친구의 배신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근처 야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기름에 지글지글 튀겨지는 룬빙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우리는 홀린 듯 줄을 섰다. 갓 구워낸 룬빙 몇 개와 편의점에서 산 이름 모를 수입 과자들, 그리고 표면에 송골송골 이슬이 맺힌 차가운 맥주 캔들이 비닐봉지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짤랑거렸다. Gu Hua Hua Yuan Fan Dian의 로비에 들어섰을 때, 정중한 직원들의 인사보다 내 신경을 더 자극하는 건 손에 든 봉투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다.
눅눅한 룬빙과 바삭한 진심들
"내일 진짜 헬스장 갈 거야? 아니면 그냥 잠만 잘 거야?"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친 친구가 물었다. Gu Hua Hua Yuan Fan Dian의 객실은 생각보다 넉넉했다. 짐을 다 풀어헤쳐도 발 디딜 틈이 충분했고, 묵직한 중국풍 가구들이 주는 고전적인 분위기와 낮게 내려앉은 조명이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침대 위에 빳빳하고 하얀 시트를 배경 삼아 야식을 펼쳐놓았다. 그것은 우리들만의 작은 성찬식 같았다.
"원기 피트니스 센터? 난 사우나만 갈래.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갔다가 다시 이 침대로 다이빙하는 게 내 완벽한 시나리오야."
"말은 잘해. 넌 그냥 걷는 게 싫은 거겠지."
우리는 룬빙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쫄깃한 피 속에 든 재료들이 입안에서 엉키며 짭조름한 풍미를 내뿜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계속 당기는, 야시장 특유의 정겨운 맛이었다. "근데 아까 그 예술 작품 말이야, 넌 진짜 이해했어?" "전혀. 그냥 파란색이 예뻐서 멍하게 본 거야." 우리는 서로의 무지를 확인하며 낄낄거렸다. 맥주 캔을 따는 '칙-'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기분 좋게 갈랐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갈 때, 낮 동안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확신이었어." 누군가 툭 던진 말에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룬빙의 남은 조각을 두고 벌인 작은 다툼조차 이 순간에는 꽤 즐거운 소음이었다.
포만감이 남긴 고요한 여백
음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빈 캔과 구겨진 냅킨, 그리고 몇 개의 과자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폭풍 같은 대화가 지나간 뒤의 방 안은 갑자기 깊은 고요에 잠겼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잘 관리된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았고, 적당한 탄성의 매트리스가 몸의 곡선을 그대로 받아냈다. 누군가 깊은 하품을 했고, 이내 규칙적인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창밖으로는 타오위안의 밤거리 조명이 희미한 선을 그리며 흐르고 있었다. 특별한 깨달음이나 거창한 인생의 교훈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배가 적당히 부르고, 옆에 편한 사람들이 있고, 내일 아침 알람을 끄고 조금 더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사실. 그 무용하고 평범한 안도감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여행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낯선 곳에 가서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가장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비축한다. 9월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천천히 잠 속으로 잦아들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조용히 에어컨 온도를 1도 낮췄다.
- 타오위안 야시장의 룬빙, 식기 전에 호텔 방에서 나눠 먹기.
- 호텔 내 홍콩식 차찬탱에서 즐기는 따뜻한 밀크티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