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은 거친 질감의 수제 유럽식 빵
수제 유럽식 빵. 짙은 갈색의 투박한 겉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 마른 나무껍질처럼 건조하고 단단한 소리가 난다. 표면에 얇게 내려앉은 밀가루 가루가 손등에 서늘하고 하얗게 묻어나며, 반으로 갈랐을 때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파열음 사이로 눅눅하고 고소한 효모의 향기가 훅 끼쳐온다. 화려함은 없지만 씹을수록 입안 가득 퍼지는 곡물의 묵직한 무게감이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힌다.
비 오는 오후, 우리만의 작은 정적
창밖에는 5월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타이둥의 비는 습기를 머금어 끈적였지만,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는 규칙적이고 차분했다.
"오늘 동롱 가니발 한다는데, 나갈까?"
그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물었다. 나는 하얀 시트 속에 몸을 반쯤 묻은 채 고개를 저었다.
"비 오잖아."
"우산 쓰면 되지."
"귀찮아. 그냥 여기 있자."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내가 뜯어놓은 빵 조각을 집어 들었다. 빵 끝부분을 천천히 씹으며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빵 끝이 좀 딱딱하네."
"그게 맛있는 거야."
우리는 더 이상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젖은 도로와 북적이는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방 안의 낮은 조도와 서로의 숨소리에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무용한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기억의 조각
Na Lu Wan Da Fan Dian의 로비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강렬한 오렌지색과 초록색의 대비였다. 처음에는 그 색채가 다소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객실의 정적 속에 머물다 보니 그 화려함조차 이 도시가 가진 야성적인 생명력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5월의 타이둥은 공기 중에 바다의 짠내와 야생 생강꽃의 달콤한 향기가 묘하게 섞여 있다. 창문을 살짝 열면 눅눅한 바람이 밀려들어 왔고, 우리는 그 바람이 피부에 닿는 미지근한 온도를 가만히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객실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쾌적했다. 특히 커다란 창문 설계 덕분에 낮 동안 방 안 깊숙이 쏟아지는 햇살은 공간을 더욱 밝고 개방감 있게 만들었다. 몸을 던지면 깊숙이 파묻히는 매트리스의 적당한 탄성 위에서, 우리는 읽지 않을 책을 펼쳐놓고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않은 시간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저 쾌적한 온도의 방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빵을 나누어 먹는 것. 그런 무용한 행위들이야말로 여행이 줄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휴식이었다.
비가 그친 뒤 잠시 내려간 야외 수영장의 물은 기분 좋게 미지근했다. 물속에서 팔을 저을 때 느껴지는 적당한 저항감과 피부에 닿는 매끄러운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수영장 너머로 보이는 타이둥의 하늘은 옅은 회색에서 서서히 깊은 푸른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물속에서 서로의 손끝이 스칠 때마다 아주 조금씩, 서로의 리듬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거창한 약속이나 뜨거운 고백은 없었지만, 함께 젖어 있고, 함께 말랐으며, 함께 배가 고팠다는 사실만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저녁으로 맛본 향신 오리 요리는 껍질이 바삭했고 속살은 촉촉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육즙과 현지 특유의 향신료 맛이 혀끝을 자극하며 여행의 감각을 깨웠다. 우리는 음식을 씹으며 다음에는 무엇을 먹을지, 혹은 다음에도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답이 없는 대화였지만, 그 불확실함이 오히려 우리를 더 편안하게 만들었다. Na Lu Wan Da Fan Dian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느릿하게, 하지만 밀도 있게 우리 사이의 빈틈을 채워주었다.
빗방울이 멈춘 창틀에 작은 물방울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 Na Lu Wan Da Fan Dian의 넓은 객실과 큰 창을 통해 타이둥의 자연광을 만끽해보길 권한다.
- 저녁 식사로 겉바속촉의 정석인 향신 오리 요리를 꼭 맛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