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후의 우리에게. 11월의 타이베이,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던 그날들을 기억해? 시시한 농담과 적당한 게으름이 섞여 있던 그 공기가 그리워. 여전히 그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웃고 있길 바라.
5년 뒤에도 선명하게 떠오를 찰나의 조각들
오렌지색 베개가 반겨주던 하얀 침대. Jie Si Lv Tai Bei Xi Men Guan의 트리플 룸에 들어섰을 때,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시트 위로 툭 놓인 오렌지색 베개가 시선을 끌었다. "와, 색깔 진짜 예쁘다"라고 말하며 몸을 던졌을 때 느껴지던 적당한 탄성, 그리고 갓 세탁한 린넨의 보송보송한 향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세 명의 성인이 함께 누워도 서로의 팔꿈치가 닿지 않을 만큼 넉넉한 공간감 덕분에, 우리는 오랜만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서로의 존재에만 집중하며 뒹굴 수 있었다.
분홍빛 만화경 속에 갇힌 우리. 네온 핑크빛 조명이 쏟아지는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의 인생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한참을 투덜거렸다. 찰칵거리는 셔터 소리와 함께 거울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조금 지쳐 보였지만, 몽환적인 빛깔 덕분에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에 온 듯한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유치할 정도로 선명한 핑크색 배경 앞에서 우리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과감한 포즈를 취하며, 억눌려 있던 어린 시절의 장난기를 다시 꺼내어 보았다.
새벽 공기를 깨우는 고소한 두유의 온기. 저스트 카페에서 맞이한 아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현지식 조식과 진한 두유 향이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11월의 서늘한 공기를 뚫고 들어온 따뜻한 컵의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질 때, 비로소 여행의 설렘이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특히 5층 리셉션에서 24시간 제공되던 시원한 얼음과 진한 커피 향은, 밤늦게까지 이어진 우리의 수다를 완성해 준 완벽한 마침표였다.
도시의 소음을 지우는 정적의 경계. 호텔 벽면의 거친 그래피티는 시먼딩 거리의 활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하지만 육중한 문을 닫는 순간, 밖의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완벽한 고요가 찾아왔다. 소란한 도심 한복판에 나만의 작은 섬을 가진 듯한 안도감, 그 경계선 위에 서서 우리는 비로소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고립을 경험했다.
5년 후 이 기록의 봉인을 해제한다면
아마 우리는 그때 먹었던 음식의 정확한 이름이나 방문했던 가게의 위치는 잊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Jie Si Lv Tai Bei Xi Men Guan의 로비에서 느꼈던 쾌적한 공기의 밀도와, 체크아웃 때 직원이 건넨 무심한 듯 다정한 목례는 기억의 잔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행 내내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아 헤맸지만, 사실 가장 좋았던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천장의 무늬를 세던 시간이었다. 짐더미처럼 쌓인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오직 현재의 온도에만 집중했던 그 무용한 시간들이,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휴식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나누었던 낮은 대화들, 그리고 함께 공유했던 그 나른한 평화가 5년 뒤의 우리를 다시 이곳으로 불러낼지도 모르겠다. 5년 뒤의 당신도 가끔은 그런 비어 있는 시간의 가치를 기억하며 살아가길.
탁자 위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과 옅은 커피 향.
- 시먼딩 레드하우스까지 목적지 없이 느릿하게 걸어볼 것.
- 저스트 카페에서 현지식 조식을 먹으며 멍하게 창밖을 구경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