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먼딩의 소란을 잠재운 우리 가족의 다섯 가지 조각들
오렌지색 베개. 9월 타이베이의 끈적이는 습기가 피부에 얇은 막을 씌운 듯한 오후, Jie Si Lv Tai Bei Xi Men Guan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마주한 강렬한 색채였다. 무채색의 정돈된 방 안에서 유일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쨍한 오렌지빛과 얼굴을 깊숙이 파묻게 만드는 푹신한 촉감은 마치 여행의 긴장을 단번에 녹여주는 포근한 품 같았다. "와, 진짜 말랑해!"라고 외치며 가장 먼저 이 색깔에 매료되어 그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잠든 것은 막내였다.
분홍색 거울 벽. 로비의 만화경 공간을 가득 채운 네온 핑크의 빛과 끝없이 반복되는 반영은 현실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차가운 유리 표면에 닿는 손끝의 감촉과 거울 속에 겹겹이 쌓이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서 있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완벽한 각도로 인생 사진을 남기겠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십 분 넘게 자리를 뜨지 않았던 큰딸이 이 마법 같은 공간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작은 냉장고. 방 한구석에서 낮게 웅웅거리는 기계음은 오히려 적막한 방 안에 안도감을 더해주었고, 손끝에 닿는 캔 음료의 서늘한 냉기는 시먼딩의 열기를 단숨에 식혀주었다. 현지 편의점에서 공수해 온 밀크티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모습은 마치 우리 가족만을 위해 준비된 작은 보급 창고처럼 느껴져 마음이 든든해졌다. 짐을 풀자마자 이 효율적인 수납 공간을 찾아내어 음료를 채워 넣은 이는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벽면의 그래피티. 거친 시멘트 벽의 질감과 그 위를 과감하게 덮은 원색의 낙서들은 도시의 생동감과 자유로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손가락으로 거친 표면을 훑을 때마다 느껴지는 도시의 맥박과 정형화되지 않은 선들이 주는 시각적 쾌감은 이곳이 타이베이의 심장부임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이것이 시먼딩의 비밀 지도가 아닐까 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한참을 관찰하고 손가락으로 짚어본 이는 둘째였다.
아침의 토스트. 5층 로비에 흐르는 쌉싸름한 커피 향과 어우러진 갓 구운 빵의 고소한 냄새, 그리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버터의 풍미는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다정한 신호였다.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전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고 가족 간의 유대감은 더욱 끈끈해졌다. 가장 먼저 토스트의 맛을 보고는 아이들에게 "따뜻할 때 얼른 먹으렴"이라며 접시를 밀어준 어머니가 이 소박한 행복을 발견했다.
아이의 작은 발가락이 내 발등에 닿았고, 우리는 그렇게 고요한 평화를 누렸다.
- 시먼역 6번 출구에서 나와 천천히 걸어보세요. 3분이면 도착하지만, 그 짧은 길에 타이베이의 생동감이 다 들어 있습니다.
- 5층 로비의 24시간 커피와 얼음을 활용해 보세요. 여행의 피로를 씻어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