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여름을 밀어내는 선명한 조각
오렌지색 베개.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시트 위에 툭 던져진 색깔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손가락 끝으로 지그시 눌러보면 적당한 저항감과 함께 몽글몽글하게 밀어내는 탄성이 느껴지는 면 소재였다. 7월의 타이베이 거리에서 묻어온 눅눅한 공기가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숨이 막힐 때, 이 베개는 그 모든 습기를 단숨에 밀어내는 유일한 청정 구역처럼 보였다. 방 안의 에어컨이 내뿜는 서늘한 바람이 정수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시야에는 오직 그 밝은 주황색만이 가득 찼다. 그것은 거리의 타오르는 태양을 닮은 색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시원하고 무해하며,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다정하게 안아주는 안식처의 색이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시먼딩의 소란스러운 경적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고, 오직 이 작은 색채의 조각만이 방 안의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정적 속에 스며든 무용한 시간의 약속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까?"
그가 젖은 티셔츠를 벗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방금 전까지 쏟아졌던 오후의 소나기 때문에 신발 속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등 뒤로 느껴지는 매트리스의 단단함과 서늘한 시트의 감촉이 좋았다.
"시먼딩 나가기로 했잖아. 아종면선도 먹어야 하고."
"그건 내일 먹어도 되잖아. 지금은 그냥 여기,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그는 내 옆에 나란히 누웠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어컨의 낮은 웅웅거림만이 방 안의 공기를 일정하게 흔들었다. 밖은 여전히 덥고 시끄러울 것이다. 사람들은 젖은 우산을 접으며 투덜거리고, 달궈진 아스팔트에서는 뜨거운 김이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방의 문이 닫히는 순간, 그 모든 소란은 남의 일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규칙적인 호흡이 닿는 거리에서, 가장 무용한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그것은 이번 여행에서 내린 가장 완벽한 결정이었다.
주황색 잔상이 가르쳐준 휴식의 정의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도 그 오렌지색 베개가 문득 떠오르곤 한다. Jie Si Lv Tai Bei Xi Men Guan의 객실은 매우 효율적이었다. 좁은 공간을 영리하게 나누어 쓴 당대풍의 인테리어와 구석에 놓인 소형 냉장고는 여행자의 짐이 방의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짐 가방의 모서리에 발을 부딪히는 번거로움 없이, 오직 서로의 존재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로비의 노 바운더리 공간에서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시간이나, 저스트 카페에서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기와 함께 시작했던 아침 식사 같은 것들. 특히 아침에 맛본 현지식 메뉴는 적당히 달고 짭조름해서, 잠들어 있던 미각을 조용히 깨워주었다. 호텔 문을 열고 나가면 3분 만에 시먼역의 거대한 소음 속으로 빨려 들어갔지만, 다시 돌아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면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사실 여행의 목적이 꼭 무언가를 보고 기록하는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낯선 도시의 한복판에서, 아주 시원한 방에 누워 상대방의 체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Jie Si Lv Tai Bei Xi Men Guan에서 서로의 리듬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거창한 대화는 없었지만, 함께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그 정적이 어떤 화려한 수식어보다 다정했다. 7월의 열기 속에서 우리가 찾아낸 가장 작고도 완벽한 도피처였다.
눈을 감아도 그 선명한 주황색이 잔상처럼 남았다.
- 저스트 카페의 조식으로 현지 느낌이 물씬 나는 아침 식사를 즐겨보길 권한다.
- 오후의 소나기가 그친 뒤, 호텔에서 도보 거리인 시먼 홍로우의 붉은 벽을 천천히 걸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