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카드키: 손끝에 닿는 매끄럽고 서늘한 감촉. 7층과 11층 사이에서 우리가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맸는지, 그리고 서로의 건망증을 비웃으며 낄낄거리던 그 유치한 소동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빳빳한 하얀 시트: 피부에 닿는 서늘하고 깨끗한 면의 감촉. 일중가의 인파에 밀려 너덜너덜해진 우리가 그대로 다이빙하듯 쓰러졌던 순간, 우리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신발을 벗어던지고 휴식을 갈구했는지 구겨진 자국들이 증명한다.
은색 샤워헤드: 어깨를 때리는 강한 수압과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뜨거운 수증기. 낮 동안의 소음과 피로가 씻겨 내려가던 시간,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고 내일의 계획을 제멋대로 수정했는지 욕실 타일들은 전부 알고 있다.
투명한 창유리: 이마를 맞댔을 때 느껴지는 차가운 온도와 그 위에 서린 희미한 입김. 9월의 타이중 야경이 보석처럼 흩뿌려진 밤, 내일은 꼭 자전거 페스티벌에 가자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결국 늦잠을 잘 거라는 우리의 허술한 내기를 기록했다.
조식 접시: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기와 달콤한 잼의 끈적임. 우리가 얼마나 게으르게 아침을 맞이했는지, 접시 구석에 흩어진 빵가루들이 말해준다. 서로의 입가에 묻은 잼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리던 그 무용한 아침의 평화.
만약 이 물건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말한다면
아마 그들은 우리를 '계획 없는 모험가들'이라 부를 것이다. 9월의 타이중은 공기가 묘했다. 완전히 가을은 아니었지만, 아침저녁으로 폐부를 채우는 공기는 제법 청량했고, 피부에 닿는 바람은 적당히 보드라웠다. 우리는 Tai Zhong Chao Sheng Xing Lv에 짐을 풀고 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야, 그냥 오늘은 여기서 멍 때리자." 누군가의 제안에 모두가 격하게 동의한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유일하고도 거창한 계획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우리는 호텔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일중가 야시장에서 길을 잃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좁은 골목 사이로 풍겨오는 기름진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를 덮쳤다. 어느 이름 모를 가게에서 먹은 복주식 의면은 짭조름하면서도 쫄깃했다. 면발이 입안에서 춤을 추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여행 가방 속에 들어있는 '혹시 몰라 챙긴' 쓸모없는 물건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그 물건들은 단 하나도 쓰이지 않았지만, 그 무용한 대화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위로 길게 늘어졌다. Tai Zhong Chao Sheng Xing Lv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방 문을 닫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숨을 참았다가 한꺼번에 내뱉는 듯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화려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공간이었다. 적당한 온도, 은은한 조명,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낮은 소음. 우리는 그 적당함 속에서 가장 큰 편안함을 느꼈다. 굳이 무언가를 더 채우려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천장의 무늬를 세다가, 결국 누가 먼저 잠드나 내기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꽤 괜찮은 밤이었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느리게 깜빡이며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
- 일중가 야시장의 미로 같은 골목을 누비려면 무조건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으세요.
- 호텔의 수압이 매우 훌륭하니, 넉넉한 세안 용품을 챙겨 온전한 휴식을 즐기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