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르다던 이들의 정직한 배신
타이중의 2월은 섭씨 17도의 서늘함과 건조한 바람이 공존하는 계절이었다. 얇은 가디건 사이로 스며드는 공기는 피부를 바짝 말렸고, 우리는 서둘러 Tai Zhong Xiang Cheng Da Fan Dian의 기계식 주차장에 차를 밀어 넣었다. 로비에 들어서자 은은한 방향제 냄새와 함께 정중한 환대가 우리를 맞이했다. 13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정적만이 흐르던 공간은 객실 문이 열리는 순간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킹베드 하나와 싱글베드 두 개가 넉넉하게 배치된 가족실은 마치 우리만의 작은 요새 같았다. 하지만 밤 11시, 정적을 깬 것은 누군가의 꼬르륵 소리였다. 저녁을 든든히 먹었다며 호언장담하던 친구가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켰고, 우리는 홀린 듯 슬리퍼를 끌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비닐봉투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간식들의 소리는 마치 이 여행의 진짜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서곡처럼 들렸다.
눅눅한 튀김과 말랑한 진심들
방으로 돌아와 하얀 시트 위에 편의점 봉투를 쏟아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밀크티와 기름진 튀김, 그리고 화려한 포장지의 대만 과자들이 흩어졌다. 우리는 킹베드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젓가락을 움직였다.
"야, 너 아까 배 안 고프다며. 기억 안 나?"
한 친구가 튀김을 씹으며 짓궂게 물었다. 정작 배고프지 않다던 친구는 이미 밀크티를 절반쯤 비운 상태였다.
"그건 아까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그나저나 여기 방 진짜 넓지 않냐? 거의 거실이 따로 있는 수준인데."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낄낄거렸다. 특히 이 방의 백미는 욕실이 두 개라는 점이었다. 세면대가 두 세트라 셋이서 씻을 때 순서를 기다리며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여행에서 가장 큰 갈등이 발생하는 지점이 '누가 먼저 씻느냐'는 것임을 생각하면, Tai Zhong Xiang Cheng Da Fan Dian을 선택한 것은 꽤나 전략적인 승리였다.
"솔직히 이번 숙소 잡은 사람 칭찬해줘야 돼. 화장실 두 개는 진짜 신의 한 수다."
"거봐, 내가 여기 깨끗하고 좋다고 했잖아. 13층이라 야경도 은근히 괜찮고."
우리는 내일의 효율적인 일정 따위는 잊기로 했다. 대신 초등학교 때 겪었던 지독하게 창피한 기억이나, 지금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튀김의 눅눅한 식감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무용한 대화들이 방 안의 노란 조명 아래 층층이 쌓였다. 셋이서 나누는 농담은 건조했지만, 그 사이로 흐르는 공기는 솜사탕처럼 포근했다. 굳이 힘내라는 말이나 거창한 위로가 없어도,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충만한 밤이었다.
포만감이 밀어낸 소란의 자리
봉투는 비었고, 뜨거웠던 대화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온기가 사라져 미지근해진 밀크티 컵만이 테이블 위에 외롭게 남았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침대로 흩어졌다. 13층 높이의 창밖으로 타이중 북툰구의 야경이 낮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도시의 소음은 두꺼운 유리창에 걸러져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넓은 방 안에는 이제 셋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간헐적인 시트의 바스락거림만이 남았다. 몸을 감싸는 이불의 묵직한 무게감이 안도감을 주었고, 방금 전까지의 소란함은 기분 좋은 잔향이 되어 공중에 떠다녔다. 무언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적당히 넓은 공간에서, 배부르게 누워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주는 행복.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재료가 된다지만, 이 새벽의 눅눅한 튀김 냄새와 친구들의 낮은 웃음소리는 꽤 오래도록 마음의 한구석에 박혀 있을 것 같았다.
어둠 속에 남은 온기면 충분한 밤이었다.
- 펑지아 야시장에서 사 온 바삭한 지파이와 시원한 버블티
- 편의점의 따뜻한 밀크티와 달콤하고 쫀득한 대만식 펑리수